“여그서 어머니 때부터 물건을 놨지. 내 나이가 80잉께, 그러니까 몇 년 째인지.”

전라도 특유의 사투리로 자신의 시장 내력을 밝히려는 위풍당당한 기세에서 야채가게 ‘약속’이 서울 황학동 중앙시장의 터주대감인 것을 알만했다.

중앙시장이 열린 지는 100년 남짓. 60년 이상 한 자리에서 장사를 해왔다면, 터주대감이 분명할 터. 하지만 중앙시장에서는 오래 자리잡았다는 것은 햇수만 그렇다는 것일뿐 기억해주는 이가 드물다. 아직도 간판 없이 큰 상점들 사이에서 힘겹게 장사를 하고 있는 노점상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서울시 창작공간 신당창작아케이드는 간판은 없지만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노점 상인들의 자긍심을 높이고, 자신의 얼굴을 걸어 질 좋은 물건을 판매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기 위해 ‘얼굴 걸고 판다’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됐다.

황학동 중앙시장 상인들의 얼굴을 바탕으로 상가 간판을 만드는 ‘얼굴 걸고 판다’ 프로그램은 일러스트레이터, 디자이너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예술가 및 일반인 100여 명의 재능기부로 진행되었다. 약 50여 개소의 중앙시장 상가에 새로운 간판이 제작·설치되었다.

중심 상권에서 밀려나고 있는 황학동 중앙시장에 생기를 불어넣기 위해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됐다는 김지혜 서울문화재단 창작공간 신당창작아케이드 담당은 “간판은 노점상 주인들의 얼굴이 들어간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는’ 간판”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중구 황학동 중앙시장

작가들은 상인들을 찾아가 사진을 찍고 스케치를 하며, 삶의 굴곡을 간판에 그대로 담도록 노력했다.

이번 축제를 위해 지난 8월부터 약 12주 간 황학동 지역 마을공동체 300여명과 신당창작아케이드 입주예술가 40여명이 머리를 맞대고 프로그램을 준비해 왔다.

“이렇게 얼굴이 걸려있으니까, 창피하기도 한데, 간판이 있으니까 내 가게가 생긴 것 같아서 전보다 기분도 좋고 손님한테 더 잘 하게 되는 것 같아”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릿거리는 1평 남짓 노점 끝에 언제 마련했는지 반들반들 윤이 나는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본인 이름을 건 간판에 대한 소감을 밝힌 중앙시장 생선가게 시장 아줌마의 변이다. 생선좌판은 그의 시장이고 인생이었다.

저작권자 © Landscape Time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