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목원’ 개념에 ‘정원’을 포함시키는 법안이 국회에 발의돼 반발이 커지고 있다.

2001년 3월 공포된 ‘수목원 조성 및 진흥에 관한 법률’에서는 종전까지 ‘수목을 중심으로 수목유전자원을 수집·증식·보존·관리 및 전시하고 그 자원화를 위한 학술적·산업적 연구 등을 하는 시설’을 수목원으로 정의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그 개념을 ‘식물원’과 ‘정원’으로 확대하겠다는 개정안이 제출된 것이다.

‘식물원’을 ‘수목원’ 정의에 포함하겠다는 데에는 나름 고개가 끄덕여진다. 중첩된 이미지에 따른 혼란이 상존해왔고, 오죽했으면 그 대표단체의 명칭도 ‘한국식물원수목원협회’라고 지었겠는가?

그러나 그 연장선상 또는 하위 개념으로 ‘정원’까지 포함시키는 것은 부당하다.

가장 큰 문제는 산림청에서 ‘정원’을 바라보는 관점이 이용 주체인 국민들의 정서와 크게 다르다는 것이다.

최근 몇 년새 눈부시게 성장한 ‘정원산업’은 무엇보다 국민들이 스스로 가꾸고 즐기는 과정을 통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으며 확산되고 있다. 우리 국민들이 느끼는 정원은 개인 주택에 있을 수도 있고, 근교 텃밭, 옥상 심지어 베란다나 재활용기 안에까지 생활 곳곳에 들어와 싹트고 있다.

그런데 ‘산림유전자원을 수집·증식·보존·관리하는 시설’의 하나로 정원을 분류하겠다고 하니,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격이다. 느닷없는 움직임에 정원의 주체인 국민들은 의아해하고, 사전에 어떤 언질도 없었기에 원예와 조경 등 관련분야에서는 불쾌하기만 하다.

두 번째 문제는 정원에 대한 법적 근거 및 관리감독 주체를 만들 필요가 있었다고 당위성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동안 정책적으로 ‘무주공산’이었던 터라 아무도 관리하지 않고 지원도 안 되고 있는 상황이니, 산림청이라도 나서서 계획을 수립하고 관리감독 하면서 예산도 지원해주면 훨씬 좋지 않겠느냐고 생각하는 것 같다.

지난 십수년간 산을 대상으로 하던 산림청이 도시로 진출하는 과정에서 조경분야의 터전을 끊임없이 침범하며 상생이 아닌 오직 임업의 이익만을 위해 추구하며 심지어 조경업 말살정책을 폈던 점을 따져본다면, 누구도 그렇게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진정으로 그렇게 하고 싶은 뜻이 있었다면 방법이 틀리지 않았는지 먼저 되돌아 볼 일이다. 일방적으로 법제화를 할 것이 아니라 정원을 향유하고 있는 수많은 정원 소유자와 국민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먼저 물어보고 이렇게 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는 게 그나마 모양새라도 낫지 않았을까?

우리는 지난 해부터 국립산림과학원, 국립수목원 등 산림청 산하기관에서 정원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표현하기 시작한 줄은 알고 있었으나, 이처럼 느닷없이 ‘수목원법’을 통해 개정안이 발의될 줄은 예측하지 못했다.

조경계와 대화와 소통이 없는 일방적 통행이 계속된다면 상생보다는 침범, 발전보다는 말살이라는 인식은 더욱 강력해질 뿐이다.

겨울이 되면 산에 서식하던 멧돼지들이 먹이가 떨어져 민가로 내려와 닥치는 대로 먹어치워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산림청은 더 이상 산에서 먹을 것을 찾을 수가 없어 이제는 도시로 내려와 ‘민가의 정원’까지 노리는 포식자가 되고 말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더 많이 소통하고 연구해야 할 것이다. 무엇이 진정한 상생이고 발전인지 말이다.

 

논설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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