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대(영남대 교수)
환경적인 윤리 추구하는 조경가, 최고의 ‘공공적 디자이너’

“공공디자인? 말도 안됩니다! … 공공시설물디자인은 있지만, 공공디자인을 영어로 번역해보라 했더니 public design이랍니다. 그러면 도시를 디자인하겠다는 것입니까? 도대체 그건 뭘 이야기하는 건가요? 공공과 관련된 모든 디자인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입니다.” 기조연설을 하는 한국도시설계학회 양회장이 언성을 높였다.

늘 나는 가능한 한 많은 전문가를 만나려고 했다. 전문지식도 필요했고, 또 다른 의견도 들어야했다. 무엇보다도 추진하는 디자인행정에 호응을 받고 싶었다. 개별적인 만남도 많았지만, 공론화하는 것이 지름길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토론회, 즉 포럼을 여는 것이었다.

그 첫 포럼은 본부장 취임한지 2년이 다되어갈 무렵이었다. “멋진 도시, 디자인대구를 꿈꾸다”라는 주제를 내걸고 대구의 도시경관과 공공디자인을 논하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주문했다. 토론에 비중을 두니 각 분야별로 골고루 구성해서 토론자가 20명이나 되었다. 자기들끼리 모여서 형식적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이견을 가진 전문가들이 함께 자리해서 갑론을박하는 기회를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양회장이 시작에서부터 열을 내며 성토하니, 비록 예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포럼을 끌고나가야 하는 입장이라 당황한 척했다. 속으로는 오늘 토론 제대로 되겠다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거침없는 토론이 이어졌다. 직원들은 다소 불안해하는 눈치였다. 본부의 성과가 무엇이냐는 지적도 나왔다. 계획의 정합성문제도 불거지고, 전문분야 별로 주문도 자꾸 나왔다. 기실 본부가 지닌 딜레마를 정확히 짚어내고 있었다. 다만 공공디자인에 관한 논쟁은 크지 않았다. 의아스러웠다. 토론자 중에는 그쪽도 많았기에. 그런데 정작 이슈는 엉뚱한데서 불거졌다.

“본부장님 만나 뵈면 ‘2년을 어떻게 지냈는지 모르겠다.’ ‘너무 힘들다.’고 말씀하셨는데 이쯤에서 시장님한테 사표를 던지시라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오늘 토론은 왠지 큰 가닥이 잘 잡히지 않는다며, 매일신문 김기자가 논점을 돌렸다. “이런 목소리들이 저는 굉장히 많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말씀하시는 분들의 목소리가 우리 도시디자인총괄본부를 향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님을 향해야 하는 것입니다.” 직원들 얼굴이 붉어졌다.

김기자는 비평과 격려를 섞어가며, 지역을 위한 것이라면서 시의 무관심을 지적하였다. 대구시에 불만이지 너에게는 감정이 없다는 식이었다. 허나 사람마음이 어디 그렇게 쉽게 구별될 수 있는가. 이때 비로소 시장이 참석해야 힘이 실린다는 것을 절감하였다. 다음부터는 늘 모시게 된다. 사실 시장불참지적은 외형적인 것이었고, 본부예산이나 행정구조문제를 아쉬워 지적한 것이었다.

썰렁한 분위기 속에서 플로어의 황소장이 거들었다. “김영대 본부장님 사표를 쓰지 마시라고 부탁드립니다. 지금 잘하고 계시거든요. 앞에서 제기된 문제의 원인이 어디에 있냐하면 디자인기초 또는 그 인프라 조성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따라서 법을 정비한다든가 시스템을 만드는, 어떤 문화적 인프라를 닦는데 주력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합니다.” 사퇴여부를 떠나 고마웠다. 그런데 사실 이때만 해도 임기 연장할 생각을 해보지 않았었다. 이후 내 고민이 된다.

좌장을 맡은 문 예총지회장이 본부장 힘내라하며, 마지막으로 정리해달란다. 나는 ‘잘살자보자’에서 이제는 ‘제대로 살아보자’로 나가야하고 그런 뜻에서 멋을 내세웠다고 했다. 그러면서 디자인행정의 어려움, 전문계약직의 한계 등을 토로하면서 제기된 문제점과 여러 의견을 최대한 검토 연구하겠다고 했다. 다소 어정쩡한 공무원식 답변이었다. 다만 내 처신을 말했다. “그런데 제가 그만 둔다면 사표를 내는 것이 아니고 2년 임기를 마치는 것입니다.”

그 후 디자인대구포럼은 해마다 계속된다. 2회는 “창의도시 대구의 전략과 디자인과제”, 3회째는 “공존, 함께 하는 도시” 등 주제를 내걸고 토론의 장을 이어갔다. 형식도 시민 속으로 들어가는 원탁회의방식으로 진화하게 된다.

그런데 실무에서 나는 여러 전문분야를 골고루 잘 모셔야했다. 실재 “조경”을 주장하는 것을 최대한 삼갔다. 오히려 미술, 시각디자인, 교통 등의 분야전문가에게 더 다가갔다. 때로는 현실에서 냉정한 이해관계이고 결국 업역 간의 전쟁이나 마찬가지인데, 과연 모두가 좋아질 수 있을까하는 회의가 들었다. 부득이 행정입장에서 형평을 추구할 수밖에 없었다. 적재적소. 그러나 공공디자인과의 마찰은 계속 된다.

어느 날 십여 년 보지 못했던 서울의 김소장이 대구시를 위해 프로젝트가 있다며 연락이 왔다. 한국디자인진흥원이 주관하는 ‘공공디자인컨설팅사업’의 하나로서 대구시의 ‘컬러풀대구 도시브랜드를 활용한 공공디자인계획’을 수행한단다. 용역비는 국비 70% 시비 30%. 마침 예산부족에다 프로젝트마저 아쉬웠고, 또 대학원후배라 퍽 반가웠다. 말이 통하는 전문가를 만난 셈이었다. 게다가 일을 많이 한다는 소문도 들었던지라, 대구를 위해 적극 부탁했다.

그런데 일이 진행되면서 틀어졌다. 대구시 요구보다 중앙의 말을 더 듣는다는 것을 느꼈다. 제목이 ‘계획’일 뿐 결과는 그런 목표로 가기위한 로드맵을 구성하는 정도였다. 즉 앞으로 대구시는 이런 방향으로 나가면 좋으니 본격적인 용역을 준비하라는 식이었다. 고도의 마케팅에 다름없었다. 이런 컨설팅용역을 전국 지자체를 대상으로 이루어졌으니, 그 효과는 매우 컸을 것이다. 다행이랄까 불행이랄까 대구는 내가 깐깐히 방어하고 요구한 꼴이 되었다.

이미 한국공공디자인학회는 2006년 설립된 이래 급성장을 해오고 있었다. 많은 조경전문가도 학회가입을 한 터였다. 또 ‘국회공공디자인포럼’까지 생겼다. 정치권에서 볼 때 공공디자인은 매력적이었으리라.

그런 덕분인지 “서울발공공디자인바람”은 전국을 강타하고 있었다. 지역의 반응은 민감했다. 여러 프로젝트 자체가 문제는 아니었다. 결국 지자체의 의사결정권자의 눈높이가 관건이었던 셈. 아직 디자인마인드가 미미한 탓인지 특히 지방의 도시농촌에서는 서울서 내려온 “공공디자이너”가 주도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대개 그래픽이 그럴싸하고 프레젠테이션기법도 대단하다. 시장개발을 잘 하고 언론에서도 “그림”이 되니까 설득력이 있어 보인 것이다. 심지어 지방에서도 어느 날 공공디자인전문가로 명함을 바꾼 사람들이 나타났다.

사실 시민은 누가 하든 결과가 잘 되면 좋아하고 손들어주게 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최종 완성물이 중요하지만, 비전문가가 미리 알 길이 없다. 결국 설득력이 강한 경쟁자가 이기게 되어있다. 그것도 실력처럼 보인다.

이와 관련해서 보완책을 구상해서 대구시 본청은 물론 구군에 가서 강연하기 시작했다. 디자인은 일부 조형분야만의 전유물이 아니며, 공간과 물건을 만드는 어느 분야이든 다 디자인이 있다고 주장했다.

공공디자인에서 중요한 관건은 “디자인윤리”라고 생각한다. 기능(眞)과 미(美)에 더하여 제3의 요건으로서 윤리(善)가 더해져야한다. 나아가서 추진과정과 디자인방법이 민주적이어야 한다. 공공의 디자인은 주변관계에서 대상이 지닌 적절한 위상을 정리하고 여러 사이에 관계를 맺어주는 일이다. 가장 환경적이라 할 수 있는 조경은 이런 점에서 가장 윤리적인 것을 추구한다. 따라서 조경가야말로 가장 최고의 ‘공공적 디자이너’가 아니겠는가!

▲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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