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휘영 한양대 명예교수
지난 3월 3일 조경의 날 기념식이 있었습니다. “조경, 위기인가 기회인가”라는 기조연설부터 각종 표창 수여와 축사, 시민 참여 행사가 이어졌습니다. 전체적으로 분위기 쇄신의 느낌이 강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조경이 왜 지금 다시 '위기'를 논하게 되었습니까? 최근의 어려움을 몰라서 하는 얘기가 아닙니다. 50년 가까이 조경인으로 살아온 입장에서 현실이 너무 안타깝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국 조경의 현실과 문제점을 짚어보고 앞날을 함께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새로운 시대의 도래
한국에 근대적 의미의 조경이 들어온 지 40여 년이 지났습니다. 도입 당시인 1970년대는 빠른 경제 성장을 지원하기 위한 국토 정비로 지축이 흔들릴 정도였습니다. 태부족이었던 사회간접자본을 한시 바삐 갖추려는 크나큰 토건 사업이 전국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급한 진행 과정에서 얼마간의 부작용이 없을 수는 없었지요. 그렇지만 환경 문제는 그때에도 국토 보존 차원에서 가볍게 보기 힘들었습니다. 마땅한 해결책을 찾던 중 우연히 눈에 띈 ‘조경’에 이목이 집중되었습니다. 역사는 우연과 필연의 조합이라는 말처럼 그렇게 시대적 부름을 받은 조경은 구원투수 역할을 톡톡히 해내었고, 그 뒤 토목, 건축과 함께 국토 개발의 한 축을 당당히 맡았습니다. 이렇게 그때는 건설 산업으로서의 조경, 엔지니어로서의 조경가의 역할이 중요했습니다. 그러나 40여 년이 지난 지금 모든 여건이 달라졌습니다. 지난 5000년의 한민족 역사보다 최근 20년의 변화 폭이 더 크다고 평가하는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바로 지식 정보화 시대입니다. 당연히 산업화 시대와는 다른 새로운 조경의 가치가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우리만이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인접한 건축, 토목 분야는 말할 것도 없고, 사회 모든 분야에서 새로운 가치가 추구되고 있습니다. 당장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더라도 각 개인과 가정, 직장에 많은 변화가 있지 않습니까? 그러한 가치관 변화의 복판에는 ‘삶의 질 중시’가 있습니다. 가족, 여가 중심의 가치와 다운쉬프트 현상, 개인주의 심화(다원화) 등을 한 예로 들 수 있겠지요. 이러한 현상은 양질의 엔터테인먼트 및 문화 콘텐츠 수요의 확대로 이어져, 이와 관련된 다양한 문화 시장의 형성을 촉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러한 변화에 맞게 조경의 새로운 가치가 충분히 재정립되었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그 때문에 조경계는 지금 적지 않은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작년에 조경헌장이 발표되어 조경을 새롭게 정의했지만 시대적 변화를 따라가기 바쁩니다. 바뀌거나 보완할 때라는 것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합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도처에 남아있는 과거의 온기가 많은 이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딜레마에 빠진 조경인들이 적잖게 보입니다. 지금은 여러 분야와 끊임없이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습니다. 새로운 관계에서 또 다른 기회가 만들어지고, 새로운 시장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 방식과 체제만을 고집하는 것은 곧 뒤처지는 결과를 만들 수 있습니다.

드러나는 문제점들
엘빈 토플러는 혁신의 요인으로 시간(속도), 공간, 지식을 꼽았습니다. 그만큼 오늘날 변화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습니다. 속도에서 뒤쳐지면 그 자체로 문제가 됩니다. 어제의 효자 산업이 오늘날 사양 산업이 되는 경우는 너무 흔합니다. 대신 더 많은 새로운 산업이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물론, 새로운 영역이라고 해서 다 블루오션일 수는 없습니다. WTO와 FTA를 내세운 세계화는 국제적인 경쟁력을 수반합니다. 기술 발달로 계속 압축되는 시공간은 국내외적 비교를 너무 쉽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국내에서는 처음 선보이는 것도 나라밖의 것과 비교되고 타 분야와 겨루어야 합니다. 수요자들의 평가도 갈수록 까다로워집니다. 그 와중에 드러나고 있는 문제점을 몇 가지만 들어 보겠습니다.

새로운 영역의 수용
강수량 보존과 물 순환 시스템, 지속가능한 에너지 활용,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 전략, 폐기물 재활용, 도시농업, 경관 디자인, 마을만들기, 생태 관광 등 새로운 영역들이 조금씩 덩치를 키우고 있습니다. 가만히 보면 다 조경 분야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 조경가가 주체적으로 담당할 수 있습니다. 조경가 중에서도 이미 뛰어들어 활동하는 사람들이 있고 또 적잖은 사람들이 관심 있게 지켜봅니다. 반면 또 다른 조경인들은 이들 중 일부 영역에 대해 경계의 눈초리를 보냅니다. 새로운 영토라기보다는 기존 영토의 상실로 보는 시각들입니다. 조경 시장이 잠식되거나 대체될 뿐이라는 걱정과 함께 조경의 정체성 상실을 우려하기도 합니다. 이들은 조경의 영역을 파고드는 인접 영역에 대해 날선 반응을 보입니다. 정책과 제도적인 문고리를 한층 더 굳건히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이렇게 대립적인 생각이 공존하는 것은 오늘날 우리의 딜레마를 잘 보여줍니다. 아마도 변화 과정에서 새롭게 조명을 받는 곳 못지않게 어려움을 겪는 곳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본래 고정된 조경의 고유 영역이 어디 있었습니까? 근대 시민권 성장과 함께 발달하기 시작한 공공 공간이 조경의 성장점 아니었습니까? ‘근대 조경’ 자체가 시대적 특성의 산물이었듯, 시대적 여건이 바뀌면 조경의 성격도 새롭게 바꿀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까지도 업역에 대한 응전과 도전의 변증법적 관계 속에서 조경의 영역은 끊임없이 새롭게 바뀌어 왔습니다. 조경의 영역을 파고드는 타 분야를 방관할 수는 없겠지만 정책과 제도로서 막아내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특정 기술이나 문화는 생산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이용하고 향유하는 대중들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사례의 하나로 제가 만든 아시아공원 환경조형물 “자연과 빛”을 들어 보겠습니다. 조경 설계 전문가들과 함께 팀 작업으로 1986년에 완공했는데, 조경인이 대형 환경조형물을 만든 국내 첫 사례였습니다. 그러나 준공 뒤 업역 침범의 위기감을 느낀 미술(조각) 분야의 큰 반발이 있었습니다. 언론을 동원한 표절 시비까지 가해져서 비슷한 작품을 만들었다는 핀란드의 조각가를 찾아가 작품 구상의 동기나 예술성의 표현이 완연히 다르다는 확인서를 받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더 이상의 말은 나오지 않았는데 결국 최종적인 판단은 결과물에 대한 일반인들의 평가일 것입니다. 따라서 업역을 지키기 위해서는 타 분야보다 나은 결과물을 만들어 내야하고, 이를 위한 질적 향상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각자도생(各自圖生)하려는 조경 단체
과거 조경 관련 단체는 손가락으로 셀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20여 개로 늘어나 그 이름을 모두 열거하기도 힘듭니다. 그만큼 다양해진 사회적 요구에 응하기 위해서 일겁니다. 특히 우리 조경은 여러 분야와 연관되어 있어 더욱 그러합니다. 그 연결고리를 통해 받는 새로운 자양분은 성장에 필요한 에너지원입니다. 건축, 토목, 원예, 임학, 도시계획 등 전통적인 인접 영역은 물론이며, 관광·여가, 사회학, 관련 생태학, 문화인류학, 디자인 등 여러 영역과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이 불가피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네트워크입니다. 각 조경 단체들이 관절처럼 연결되어 여럿이면서도 하나로 작동하는 상태(구성 체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아직 그러지 못하고 십인십색의 목소리를 낼 때가 많습니다. 힘은 연대와 네트워크에서 나오는데, 오히려 서로가 중복되거나 서로의 역할을 모호하게 만드는 경우가 종종 눈에 띕니다. 그 결과가 무엇이었습니까? “조경기본법”을 거창하게 내세웠다가 “조경산업기본법”으로 물러났습니다. 산림 분야가 이런저런 조어를 양산하며 목소리를 높이는데도 속 시원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접 분야의 견제로 오랜 숙원이었던 조경기본법이 끝내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지만, 스무 개나 되는 조경관련 단체들이 있는데도 법안 하나를 밀어붙이지 못했다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흐지부지 되어버린 조경기본법은 우리에게 좋은 반면교사입니다. 여러 조경 단체의 존립 근거는 회원과 회원사에 대한 지원일 것입니다. 구성원들이 각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할 수 있도록 필요한 서비스와 지원을 하게 됩니다. 그렇지 않고 한낱 친목 단체에 머무른다면 그 존재의 의미를 제대로 인정받기 힘들 것입니다. 학술 단체는 사회에서 새롭게 조명 받는 분야로 진출하기 위해 어떠한 학술적 고민과 교육적 연구를 했는지, 산업 단체는 시장 정보와 동향 분석을 얼마나 제공했는지, 기술인 단체는 기술인들의 권익 옹호와 정보 제공을 위해 어떤 활동들을 하고 있는지 성찰해 봅시다.

국내 시장 안주
설계, 시공, 관리 등 전 분야에서 빠르게 일거리가 줄고 있습니다. 물론 건설업 전체의 구조조정이 국가적으로 필요하다는 진단이 많음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경 시장의 수요 감소를 전반적인 건설업 경기 탓으로 돌릴 수만은 없습니다. 조경이 온전히 건설 산업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건설 경기와 동조화 현상을 지나치게 당연시할 필요는 굳이 없다고 봅니다. 지금의 수요 감소는 어찌 보면 새로운 시장 개척 노력을 소홀히 한 우리 스스로의 책임도 없지 않습니다. 한동안의 부동산 경기 활황이 주는 일거리에 도취되어 대비를 소홀히 한 상당수 조경 회사들을 대표적으로 지적할 수 있습니다. 건설의 성격이 강했던 산업화 시대의 조경과는 달리 문화로서의 조경을 끊임없이 모색해야 하는 것은 바로 새로운 수요 창출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21세기 지식 정보화 시대는 바로 문화의 시대이므로 다양한 문화 산업의 본격적인 발전이 점쳐집니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말은 알다시피 투자의 기본 원칙입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가 그동안 다양한 시장을 만들어내지 못했던 것이 지금에 와서 뼈아픈 실책이 되었습니다. 해외 시장에 대한 관심 부족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건설업을 벗어나 문화 산업으로 발돋움해야 하듯이, 조경업의 해외 진출은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중진국, 산업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개발도상국에 진출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생존의 필수 사항입니다.

지식 정보화 시대의 비전
새로운 시대의 조경
지금은 한국 조경이 산업화 시대의 건설업에서 지식 기반 시대의 문화 산업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있다고 보입니다. 이러한 변화가 적지 않은 이들에게 두려울 수도 있습니다. 분명히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조경은 기본적으로 이용자를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입니다. 사회적 트렌드와 수요자에게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습니다. 시장 변화를 빠르게 받아들여 그에 맞는 창의적인 서비스를 내놓아야 합니다. 때로는 우리가 먼저 시장을 이끌거나 유도해야 할 때도 있겠지만 분명히 한계가 있습니다. 시장은 살아있는 생물처럼 그 자체로 기능하고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외면한다면, 조경계 전체가 동시대인들로부터 외면 받는 처지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직업적으로 볼 때 조경가는 정착민이라기보다는 유목민에 가깝습니다. 끊임없는 영토화와 탈영토화, 재영토화만이 우리에게 활로를 열어줍니다. 조경의 정체성 역시 고정되어 있지 않고 오히려 새롭게 변주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지금까지의 역사를 볼 때 그것은 자연과 문화의 대립을 넘어 역동적이고 창조적인 과정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대립이 아니라 융합과 재창조로 새로운 정체성을 얼마든지 구현할 수 있다고 봅니다. ‘조경(造景)’이란 용어조차도 시대적 요청이 있다면 분야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역할을 대변하는 용어로 보완하거나 바꾸지 못할 까닭이 없지 않을까요? 유목민에게 고정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듯이, 새로운 변화와 발전을 위해 우리가 하지 못할 것은 이제 아무것도 없습니다. 바우만은 불확실성이 점점 많아지는 현재를 ‘유동하는 근대’로 정의했습니다. 고정적·지속적·안정적인 것 없이 끊임없이 변화하고 움직이며 유동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의 극복책으로는 ‘유연성’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유연함으로 무장하여 더 빨리 움직이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시장의 지배자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빌 게이츠는 “특정 분야에 스스로를 가두어 마비되기 보다는 어떤 가능성의 네트워크에 자신을 위치시키는 것을 선호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유연하게 계속 위치를 바꾸며 활약하는 멀티 플레이어 같은 느낌을 주는데, 조경가들에게도 좋은 행동 모델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과학과 문화의 융합을 고심해 봅시다. 주목 대상으로서 IT 분야를 들고 싶은데 이미 모든 분야에서 활용도가 증가되고 있습니다. 조경 공간이 가지는 시공간적 한계 극복과 콘텐츠 다양화를 위해서도 그 필요성은 큽니다. 국내 몇몇 공원에서도 이미 탐색적으로 시도되었으나 좀 더 많은 노력과 관심이 필요합니다. 간단한 사례로, 세계미래학회에서는 2014년까지 광섬유 식물이 정원에서 길러지고, 2019년까지 가상현실로 꾸며진 휴게 공간 등장을 예측한 바 있습니다. 최근 쓰임새가 커져가는 스마트 태그를 공원 식물이나 시설물에 붙여 교육 콘텐츠를 적시에 제공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조경에서도 갈수록 IT의 활용도가 높아질 조짐이 늘고 있습니다. 어떤 IT를,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도입할 것이냐의 구체적인 실행 방법은 조경가 각자의 창의력이 요구되는 부분입니다. 조경은 21세기에도 활발히 작동하리라 확신합니다. 다만 몇 군데 세부 영역과 일부 산업은 사양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결국 시대에 맞는 새로운 콘텐츠가 선택 대상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교육과 대학의 비전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여러 문제 중에서도 대학은 항상 우선적인 관심의 대상이 됩니다. 무엇보다 기본기가 중요하고, 항상 사람이 우선이기 때문입니다. 조경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기본에 충실하고 폭넓은 응용력을 갖춘 인력이 계속 공급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사회의 빠른 변화를 감안한 대학 교육 과정 재검토가 시급한 시점입니다. 사회에서 조경과 관련된 새로운 영역들이 속속 생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조경가의 관여가 쉽지 않습니다. 오히려 조경가보다는 다른 분야에서 나설 때가 더 많습니다. 발주처 및 의뢰자나 일반인들도 조경과의 연관성을 몰라줄 때가 많습니다. 결국 조경가가 가장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공감을 얻지 못하고 혼자만의 독백이 되고 맙니다. 이들 영역에서 조경이 적임자임을 내세우려면 차별화된 결과물을 내놔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대학에서부터 관련 지식을 익혀야 합니다. 그런데 현재의 교육 과정은 아쉽게도 이러한 사회 변화를 탄력적으로 수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학 뿐 아닙니다. 교육은 대학 교육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지식 정보화 시대는 새로운 지식이 계속 생산되므로 끊임없는 재학습이 필요합니다. 타 분야와의 연관성이 높은 우리 조경인들에게는 더욱 그러합니다. 효과적인 재학습을 지원할 수 있는 다양한 교육 매체가 있어야 합니다. 이동성이 많은 우리 사회로서는 정규 교육 외에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사회 교육 시스템을 겸비하는 것이 효과적이라 생각됩니다. 이러한 대학 안팎의 교육체계 정비를 위해선 대학뿐 아니라 관련 학회와 기술인 단체의 협조 체계가 절실합니다. 한두 단체만의 정책적 대안은 해결력이 약하며, 같이 머리를 맞대야 합니다.

공공 부문의 변화
민간 부문보다는 덜하지만 공공 부문도 과거보다 어려운 여건입니다. 공공 부문을 옥죄는 것은 현재보다는 앞으로의 불안감이 더 큽니다. 조경 관련 공공 부문은 ‘건설 분야’가 많습니다. 그런데 건설 분야의 구조조정과 시장 축소는 공공 부문이라고 해서 피해갈 수 없습니다. 특히 주택 수요 감소는 택지 개발 사업 축소로 이어지고, 신도시와 같은 대규모 조경 사업 대상지가 갈수록 줄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공공 부문은 택지 개발 및 주택 공급과 관련된 조경 사업을 많이 다루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계속된 수요 덕분에 새로운 시장 개척을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상황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더구나 앞으로의 시대는 공적 서비스가 줄어들고 많은 부분이 시장 논리에 따라 기업에 위임되는 시대입니다. 새로운 시장 개척은 민간뿐 아니라 공적 영역에서도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되었습니다. 조경은 공공 공원(public park)과 함께 급성장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지금과 같은 전환기에 공공 부문은 방향타 역할을 합니다. 21세기 지식 기반 시대에서 문화에 접목할 수 있는 시장 개척의 상당 부분은 공공 부문에 달려 있습니다. 인구 구조의 변화는 그 한 예입니다. 저출산 고령화는 주택 수요를 감소시키지만 반대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낼 수도 있습니다. 고령 인구 증가는 어쩔 수 없이 이와 관련된 서비스 생산을 촉진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특히 외국의 경우를 볼 때 공공 부문 확대가 확실시 됩니다. 따라서 이러한 변화를 잘 예측하고 준비를 한다면 공공 부문에서 이와 관련된 새로운 시장 개척이 얼마든지 가능하리라 봅니다. 공원 일몰제에 몰린 도시 공원의 해법 찾기도 공공 부문의 당면 과제입니다. 대안으로 민자 유치가 제시되었으나 지금까지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여 새로운 방안이 필요해 보입니다. 공원 일몰제, 국가공원, 조경 관련 법제 지원 등 공공 부문에서 풀어나가거나 협력해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이들 사안을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 21세기 한국 조경의 지형도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좀 더 많은 책임 의식을 촉구합니다.

조경업계의 변화
그럼 조경업계는 어떠합니까? 분야의 특성상 우리 조경계는 작은 사업체가 많습니다. 대형 건설사들도 있지만 조경 인력을 많이 쓰지 않기에 중소기업 구성비가 높습니다. 시공 분야도 마찬가지겠으나 설계 업체들은 최근에 몸집을 많이 줄였습니다. 경기 불황의 여파입니다. 그렇지만 동시에 소규모 창업도 계속 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조경 산업체는 특성화된 다수의 소규모 사업체와 소수 대형 사업체의 공존이 예상됩니다. 이들은 각자의 시장에서 활동하며 때때로 협력하는 방식이 경영 효율성을 높이는 데 효과적일 것입니다. 미래 주거 구조로서 탈아파트 선호가 높으므로 개인 수요의 증가가 점쳐집니다. 소형 사업체들이 충분한 준비를 한다면 이 수요를 상당부분 가져갈 수 있습니다. 다만 양질전환의 법칙에 따라 특화된 기술력 보유가 보다 중요해 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또한 기술 수명이 자꾸 짧아지고 있어 끊임없는 혁신을 추구하는 기업가적 마인드는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조경 시장의 성숙에 따라 수요자의 요구도와 선호도 또한 보다 다양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마케팅적 사고방식이 요구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새롭게 생겨나는 신규 시장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신생 업체는 더욱 그러합니다. 이들 새로운 시장은 아직 시장 규모는 작지만 그 때문에 상대적으로 경쟁이 치열하지 않아 신규 시장 진입이 용이합니다. 앞으로 공공 시장의 축소와 민간 시장의 확대가 예상되며, 특히 민간 시장은 수요 패턴이 다양화될 것이므로 이에 대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새롭게 시장을 개척한다는 벤처 정신이 조경업계에도 강하게 요구되는 현실입니다.

새로운 시장을 찾아
신규 시장은 새로운 업역 개척과 해외 시장 개척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특히 해외 시장과 관련해서는 이미 자국 문화 산업에 대한 세계 각국의 전략적 육성 노력이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에서도 문화융성위원회를 만들어 이에 대비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과거부터 지적된 조경수종의 단순성, 소재의 빈곤함 등은 대부분 좁은 국내 시장에 그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국내 시장이 계속 커졌기에 국제화를 미룰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조경을 포함한 많은 분야에서 나라 안 시장은 한계에 도달했고, 그 돌파구로써 해외 시장에 눈길이 쏠리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조경의 해외 진출은 너무 저조했으며 거의 없는 수준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계획, 설계, 시공, 감리, 운영관리 등의 조경 영역이 해외 진출을 하려면 어떻게 준비해야 합니까? 기업 단위 노력과 지원 시스템 구축, 콘텐츠 개발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기업 단위에서는 꾸준한 접촉과 소통으로 기회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개의 해외 수주는 단번에 되는 경우보다 수차례의 온·오프라인 접촉 끝에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관건은 소통인데, 언어적 소통과 내용적 소통을 모두 겸비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언어적 소통은 미국에서 활동 중인 최계영 박사(홍익대)가 얼마 전 라펜트 인터뷰에서 강조했듯이, ‘인격적인 기’가 꺾이지 않고 동등한 전문성을 인정받기 위한 필수 요소입니다. 형식적 소통을 위해 ‘언어’가 필요하듯이 내용적 소통을 위해선 해당 국가나 지역의 문화적 이해가 요구됩니다. 조경은 역사와 주거 및 생활양식과 같은 문화적 요소와 연관성이 높은데, 상대국 문화에 대해 문외한이어서야 상대방의 신뢰를 얻기 힘들지 않겠습니까? 중동은 과거부터 대형 건설사 중심으로 한국 조경이 꽤 활동해 왔습니다. 최근에는 동남아시아쪽의 진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해 중소기업은 그 경량성 덕분에 출발은 늦었으나 좀 더 넓은 지역을 누비고 다닙니다. 아직은 시설물과 같은 소재 분야가 가장 활발하나 점차 다른 분야로 확장될 여지를 보이고 있습니다. 중남미나 아프리카 동부권을 포함한 개발도상국들은 국가 경제가 성장 단계에 막 진입하여 국토 개발 사업이 상대적으로 활발합니다. 민간 부문에서도 이들 국가의 상위 계층은 상당한 소비력을 가진 경우가 많아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에서 모두 상당한 잠재력을 가진 시장으로 눈여겨 볼만 합니다. 성공적인 해외 시장 개척을 위해선 기업별 노력도 필요하지만 이를 받쳐주고 지원해주는 조경 단체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물론 조경 단체가 코트라(KOTRA)와 같은 역할까지야 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적절한 해외 정보 소개라든가 국제행사 참여로 다양한 접촉의 기회를 만들어 주고, 우리의 기술력을 홍보해주는 것은 국외 진출의 좋은 밑돌이 됩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한국조경학회에서 연전에 벌어진 IFLA 유치와 취소 해프닝은 매우 씁쓸한 경험이었습니다. 충분한 내부 논의 없이 국제대회 유치가 결정된 것은 분명 성급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다시 IFLA 본부에 정면으로 부인한 것도 결과적으로 우리 이미지를 크게 떨어뜨린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자는 게 아닙니다. 다만, 새로운 시장 개척이 절실한 이 시점에서 볼 때 IFLA와 같은 국제행사는 우리 기술력을 국외에 널리 알리고 홍보하는 좋은 기회일 수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IFLA 대회 유치를 포함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한국조경학회를 중심으로 조경 단체들이 머리를 맞대고 해외 진출을 위한 장기적인 로드맵을 수립하기를 희망합니다. 마지막으로 콘텐츠 개발과 관련하여 국제화를 대비한 최고의 상품은 누가 뭐래도 ‘전통 문화’입니다. 국제화의 방법은 전통 산업과 신기술 융합이 결국 관건이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우리의 유구한 전통 조경을 자원화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를 들면, 삼국시대와 고려의 정원 문화, 조선시대의 별서 및 궁궐 정원, 풍수지리 사상과 기법을 현대에 맞게 발전시킨다면 해외 진출의 좋은 문화 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방법은 하루아침에 개발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관련 단체를 중심으로 지속적인 연구 개발이 필요합니다.

조경 문화의 융성을 위하여
마지막으로 조경 문화 융성의 전제 조건인 ‘조경인의 능력 배양’과 문화화되는 경로로서 ‘대중과의 친밀화’를 살펴보겠습니다. 조경인의 능력 배양의 핵심은 크게 세 가지를 꼽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 다양한 분야를 아우를 수 있는 ‘복합성(complexity)’입니다. 이종 분야 간 통섭을 할 수 있는 융복합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문화적 소양을 갖춘 ‘인간다움(humanity)’입니다. 문화로서의 조경을 위해서 그렇습니다. 셋째는 ‘창의성(creativity)’입니다. 기존의 다양한 것들을 문화적 용광로로 녹여내어 조경을 위해 주조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훨씬 창의적이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대학, 학회, 기술인 단체 등이 합심하여 지금보다 좀 더 노력하고 지원하면 좋겠습니다. 이를 위한 미래의 대학 교육 방향은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보았습니다. 첫째, ‘기초 소양 교육의 강화’입니다. 문화적 조경을 위해서는 다양한 문화적 소스를 읽어내고 텍스트를 창의적으로 해석해 내야 합니다. 이를 통해 기술자로서의 조경인이 아니라 문화인으로서의 조경인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둘째, ‘융·복합 촉진 학제’입니다. 몇몇 대학에서 볼 수 있는 자유학부제(혹은 자유학과제)와 일맥상통한 것으로, 탄탄한 기초 소양 교육의 토대 위에서 다양한 융복합력을 키우는 것입니다. 학과 이기주의 소멸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셋째, ‘대학 단위의 교수 채용과 과목의 개방화’입니다. 학생의 융복합력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교수 역시 틀에 박힌 학과 단위 구성보다는 대학 단위 구성을 시도해 봄직 합니다. 또한 교수별 담당 과목 교육을 반복 되풀이하는 현재의 방식은 자칫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기에, 과목 개방화 등으로 교수진의 연구·개발을 한층 더 촉발시켜야 합니다. ‘선생님’이 아니라 ‘직장인’으로 대학에 있다가, 학과 폐지의 위기에서도 학과 회생을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개인적 안위에 급급한 이들이 없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교육 체제 개편의 직접적 책임자는 각 대학이지만, 조경학회와 조경사회 등 조경 단체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21세기 문화의 시대에 조경이 문화산업으로 자리 잡기 위해선 조경의 대중화를 좀 더 전략적으로 추진해야 합니다. 조경에 대해 알고 있는 일반인은 많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알고 있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IFLA와 미국이 4월을 각각 조경의 달로, 영국이 가드닝 주간으로 정한 것은 매우 시사적입니다. 미국은 4월에 미 전역에서 다양한 행사들을 개최하고 있는데 계절적으로 적합하여 일반인들의 호응이 무척 큽니다. 영국 역시 봄철에 가든 쇼를 비롯한 국내외적인 행사를 수많은 일반인들의 참여 속에서 펼치고 있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조경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를 위해, 또 좀 더 일반인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조경의 달’ 신설을 제안합니다. 조경의 달은 조경인들만의 잔치가 아니라, 우리의 조경 문화를 국민과 전 세계에 보여주는 기회로 활용하는 목적이 가장 커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더 편하게 모일 수 있는 시기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계절적으로 조경의 아름다움을 맛볼 수 있는 시기와 국제적인 연대까지 고려한다면 4월을 우선적으로 검토할 수 있겠습니다. 야외 활동을 하기에 가장 좋은 계절이기도 합니다. 국립공원협회를 비롯해 조경과 관련이 있는 다양한 단체들과 일반 대중이 대규모로 참여하는 이벤트의 기획도 충분히 가능할 것입니다. 기왕이면 4월의 특정한 날을 지정하기보다, 4월을 ‘조경의 달’로 정하고 ‘4월 넷째 주 토요일’처럼 많은 이들의 참가가 용이한 날을 ‘조경의 날’로 정하는 것도 고려해 볼만 합니다. 4월이 되면 새파랗게 옷을 갈아입는 전국의 신록들처럼, 일반인들의 관심과 호응 속에 한국의 조경 문화가 만개했으면 합니다.

우리의 전통 조경을 조경 1.0, 산업화 시대의 조경을 조경 2.0으로 본다면, 우리는 이제 지식 기반 사회에서 새로운 조경 3.0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서양에서 공공 조경이 근대화의 산물이었듯 시대적 변화는 또 다른 조경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모든 변화는 항상 두려움을 동반합니다. 두려움은 변화를 거부하고 결국 소외되는 결과를 낳습니다. 그러나 적절히 변화의 방향에 자신의 목적을 맞출 수 있다면, 변화는 새로운 도약의 기회가 됩니다. 이런 입장에서 지금까지 한국 조경 3.0을 위한 당면 과제를 몇 가지 정리해 보았습니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과제의 성공적 수행을 위해서는 조경계의 결속이 가장 중요합니다. 다섯 개 손가락을 모아 주먹을 쥐어야 힘이 생기듯, 조경계 모든 구성원의 강한 연대가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힘이 생기지 않습니다. 연대와 결속을 위해선 구심점이 있어야 합니다. 스무 개 조경 단체장들이 제각기 구심점의 주체가 되어 희생적으로 앞장서야 합니다. 구심점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조경계 발전 로드맵을 구상해야 합니다. 로드맵에서 제시된 과제별, 단계별 실행 프로그램을 한 몸이 된 스무 개 단체가 이끌 때, 비로소 우리의 조경 문화는 변화의 시대에 튼튼한 새 뿌리를 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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