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지 않고 다른 나라에 예속돼 있을 때 이를 ‘식민지’라고 부른다.

우리나라 조경의 주권 또한 조경인에게 있지 않고 인접한 열강분야들이 맘대로 주무르고 있는 비정상적인 구조는 사회 구성원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들의 가치와 기준은 조경에 있지 않고 오직 그들 분야의 이기주의에서 기인하고 있으니, 조경의 주권을 찾는 일은 지속가능한 생태녹지 정책을 펼치기 위해서 필수불가결한 사안이 돼버렸다.

최근 국토교통부는 그것을 다시 한 번 증명이라도 하듯이 장관이 고시하게 돼 있는 ‘조경기준’을 폐지하고 지자체에 위임하겠다는 계획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조경기준은 현행 법에서 조경을 정의하고 다루는 법령이 없기 때문에 기형적으로 건축법에서 다뤄지고 있다. 장관 고시에 해당하여 위계상 하찮게 보일지 몰라도 국가법령 가운데서는 유일하게 조경의 범위와 역할을 명시하고 있어서 ‘마지막 보루’인 셈이다.

그러나 국토교통부 건축정책을 담당하는 공무원들은 이것마저 건축 활성화에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하며 이미 지방에서 조례로 운용되고 있다는 핑계로 폐지를 추진한다는 것이다. 조경계의 명운이 달린 이처럼 중차대한 일을 추진하면서 국토교통부 건축정책 담당자들은 조경계와 협의조차 하지 않았고 조경계는 인지하지도 못했다. 조경의 주권이 스스로에게 없음을 다시 한 번 뼈저리게 각인시켜주는 사건이다.

그렇다면 국가법령에서 이마저 없앤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조경기준은 ‘대지 안의 조경’에 대한 국가 표준을 제시하고 건축주가 지켜야 할 의무사항을 정하고 있다. 따라서 각종 용어에 대한 정의와 함께 조경 공종별 지켜야 할 사항들을 나열하고 있다.

만약 이를 없애고 지자체 조례로 위임하게 된다면 조경면적 축소와 의무대상 폐지로 이어질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대다수 지자체에는 도시공원법에 따른 ‘도시공원위원회’가 구성되지 못하고 이 기능을 도시계획위원회가 대신 수행하고 있다. 조경면적을 규제로 분류한다면 이를 배제하려 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토교통부는 지난 몇 년간 건축법, 건축기본법 등을 개정해 가면서 의무 조경면적 완화 대상을 계속 확대했다. 이에 따라 건축물 조경면적이 축소되고 재래시장, 골프장, 공장 등에는 산업을 활성화 한다는 미명아래 조경 의무대상에서 제외시키는 등 ‘규제완화’로 일관했다.

그럴 때마다 반발을 의식한 듯 국토교통부는 “법령이 개정된다고 해서 지자체가 반드시 조례에 반영해야 하는 강제사항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현실은 철저히 시장논리에 따라 움직였고 극히 일부 지자체를 제외하고는 기다렸다는 듯이 조례를 고쳐서 조경 없는 건축을 노골적으로 밀어붙였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너무나 삭막한 여건에서 살고 있다. 수십 개의 ‘건축’이라는 법체계가 거미줄처럼 존재하는 가운데 ‘조경’이라는 법률이 허름하게라도 없기 때문이다. 지금 쟁점으로 떠오른 조경기준은 건축이라는 지붕아래 기형적으로 자리 잡으면서 출발부터 문제가 된 것이다. 오직 건축의 발전만을 목적으로 하는 국가 건축정책 담당공무원들은 조경의 미래에 대해 얼마나 안중에 두고 있을까?

이런 상황에서 조경은 ‘개발’이라는 미명아래 자행되는 도시녹지와 생태 파괴를 막기 위한 물러설 수 없는 마지노선이 돼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지키고 가꿔나갈 수 있는 ‘주권’이 조경 스스로에게는 없다. 이것은 조경인은 물론이고 우리 국민들에게도 큰 비극이다.

 

논설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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