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북 청주시 옛 연초제조창 전경 (사진제공 : 청주시)

재생을 통해 문화 중심지로 거듭날 것으로 국제적인 기대와 관심을 받고 있던 충북 청주시 연초제조창 부지가 당초 문화예술공간 중심 도시재생계획으로 추진해오던 것과 다르게, 최근 유통중심의 변경계획을 발표해 논란이 커지고 있다.

애초 '문화'를 중심으로 '재생'하겠다는 내용은 빠지고 민간투자 규모 확대와 함께 호텔, 명품관, 면세점, 비즈니스센터, 멀티플렉스 등의 대기업 유통시설 유치 계획을 밝혀, 지역 주민과 중소상인, 문화예술인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 최대 규모 담배공장이었던 옛 청주연초제조창은 2004년 가동중단 이후 방치되다가 국제공예비엔날레를 계기로 문화예술 중심지로 새롭게 재생될 것이라 기대를 모아왔는데, 지난해 국토교통부가 도시재생선도지역으로 지정하면서 본격적인 재생 사업이 추진될 예정이었다.

청주시는 그동안 리모델링·보존을 통해 연초제조창을 문화예술 중심 단지로 재생해야 한다고 결정하고 도시재생대학·심포지엄, 전문가 초정 세미나, 주민·지역전문가 역량강화, 공모사업을 추진하는 등 주민들과 함께 도시재생 방안을 모색하고 있었다.

그러나 시는 최근 4월 국토부에 사업 신청을 앞두고 무리한 일정과 계획안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5일 공청회를 통해 발표한 ‘청주시 경제기반형 도시재생 활성화계획안’은 공모 당시 세웠던 계획과는 그 성격이 많이 다르다.

기존 총사업비 1380억 원(국비 250억, 시비 250억, 민자 880억 등) 규모에서 국비와 시비는 그대로 두고, 민자를 2500억 원 규모로 크게 늘려 총 사업비가 3962억 원이 됐다. 이 중 민간투자규모가 1700억원 가까이 늘어나면서 전체 비중의 64%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그동안 함께 도시재생을 추진해왔던 지역 경제·문화단체들은 이러한 청주시 방침에 대해 일제히 반발하고 사업계획의 전면 수정 요구에 나섰다. 쟁점이 되는 부분은 재벌기업 유통산업 진출로 지역상권이 붕괴될 것이라는 지적, 또 연초제조창이 문화예술공간으로 재생되지 못하고 그저 대형 자본들이 들어선 건물로만 사용될 것이라는 지적, 주민들과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지적 등이다.

공청회를 통해 발표한 시의 계획안은 연초제조창 건물을 문화업무시설, 비즈니스센터로 바꿔 기업입주시설, 컨벤션룸, 비즈니스센터, 호텔 등을 유치한다는 것으로 당초 문화예술 중심 도시재생계획과는 판이하게 동떨어진 안이다. 건물뿐만 아니라 도시재생사업부지로 지정된 주변은 다른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쇼핑·업무단지’와 다를바 없이 구성돼 있다. 쇼핑, 영화관람, 외식 등을 위한 복합레저시설, 멀티플렉스, 프리마켓, 특화광장, 공원, 카페 등의 여가공간, 스튜디오 레지던스, 커뮤니티센터 등에 계획이 집중되어 있는 반면, 문화예술공간은 전시관, 수장고, 공연장 등의 소극적인 시설 계획에 그쳤다. 거기에다 공모 당시 계획안에 포함됐던 연초제조창의 역사성·상징성을 보여주는 ‘담배박물관’은 이번 계획안에서는 아예 빠졌다.

청주시는 국토부 승인 신청을 앞두고 청주 연초제조창의 고유한 문화성과 역사성을 무시한 채 ‘백화점식 계획’을 내놓았다. 이는 결국 기업의 구미에 맞춘 계획들로 대형 유통자본 진출을 용인하는 것이라는 반발이 거세다. 충북·청주 경실련 등 시민단체와 청주 성안길 상인들은 이 계획대로 간다면 사실상 대기업자본이 투자되고 지역 상권에 커다란 문제를 야기할 수 밖에 없다며 사업계획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 이승훈 시장은 "옛 연초제조창에 유치할 유통시설은 성안길 상권에 끼칠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중국 관광객들을 겨냥한 명품관이나 면세점이 될 것"이라며 "대형마트와 일반 아울렛을 불허해 기존 청주 도심 상권에서 취급하는 것들과는 충돌하지 않게 할 것"이라고 대응했다.

이 시장은 그동안 청주시를 1등 경제 도시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공식 행사 등에서 수차례 밝힌 바 있다. 이런 배경에서 시장이 바뀌면서 계획안도 투자유치 중심으로 바뀐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이유다.

또한 청주시는 국토부 승인 일정이 촉박하다는 이유로 ‘시민사업추진협의회’ 등을 구성하지 않고 각종 절차를 생략했다. 이 부분에 있어서도 주민, 상인, 문화예술인들과 충분한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사업일정계획을 세우는 등 도시재생사업의 본래 의미를 잃어버린 ‘사업을 위한 사업’으로 졸속 추진하고 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 6일 충북·청주 경실련은 성명서에서 “민간 사업자 관심은 도시재생이나 지역경제 활성화가 아니라, 사업성”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 수차례 연초제조창 부지 활용 방안에 대한 시민·전문가 포럼을 진행했음에도, 활성화계획을 추진하면서 ‘개발계획’과 다를바 없는 계획이 나왔다”며 “결국 연초제조창이라는 건물만 살린 도시재생 계획이 돼 버린 것이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렇게 촉박하게 진행될 필요가 없는데, 이대로 가면 나중에 계획을 돌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한 지난 12일 충북지역경제살리기네트워크, (사)한국미술협회 충북도지회 등 4개 예술단체도 성명을 내고 청주시의 도시재생계획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이들 단체는 "옛 연초제조창은 그 자체로 청주의 중요 문화자산이자 역사적 자산"이라며 "청주시가 여론을 무시한 채 졸속행정으로 사업을 추진, 지역 문화예술인을 절망으로 내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관 주도의 일방적 행정이 아니라 문화예술인과 상생할 공간 조성에 나서라"며 "문화예술 향기를 나눌 실질적 문화예술의 메카가 되도록 전면 재논의돼야 한다"고 밝혔다.

1946년 문을 열어 한 때 국내 최대 규모 담배공장이었던 옛 청주연초제조창은 2004년 가동중단 이후 10년간 흉물로 방치됐다. 연초제조창의 존폐는 2010년 청주시가 보존을 위해 350억 원에 건물을 매입하고 나서도 지역사회의 심각한 고심거리였다. 그러다 2011년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개최를 계기로 세계 각국 미술관·박물관 전문가, 문화기획자들과 관람객들에게서 “도심 한 복판에 대규모 공장 건물이 남아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축복이다”, “세계적인 전시공간, 문화예술 공간으로 손색이 없다”는 등의 찬사를 받으며 새로운 회생의 길이 열렸다. 이후 리모델링·보존을 통해 연초제조창을 문화예술공간화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짐에 따라 그동안 도시재생대학·심포지엄, 전문가 초정 세미나, 주민·지역전문가 역량강화, 공모사업 등의 활발한 밑작업이 이루어졌다.

2014년 5월에는 국토부 도시재생 선도지역 13개 지역 중 도시경제기반형 선도지역으로 지정됐다. 폐공장부지(연초제조창)을 활용한 공예·문화산업지구로 대상지역은 충북 청주시 상당구 내덕 1·2동, 우암동, 중암동이다. 국토부는 이에 2017년까지 4년간 사업을 시행하며 국비 250억 원, 시비 250억 원을 투자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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