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지역과 도시 재생을 위한 마을만들기 발굴에 나섰다. 관 주도가 아닌 주민 주도의 움직임, 8일 만난 신(新)보부상을 꿈꾸는 전남 강진군 논두렁밭두렁과 행복울타리협동조합 편이다.

▲ 전라남도 강진군 오감길 떡카페 건물 외벽 위로 논두렁밭두렁 토요문화야시장 현수막이 걸려 있다.

전남 강진읍 오감길 강진시장 건너편 떡카페 떡떡쿵떡쿵 앞마당에는 매주 토요일마다 젊은 농민들이 만드는 새로운 장터가 열린다. 일명 논두렁밭두렁에서 주최하는 토요문화야시장. 앞으로 다른 지역으로도 옮겨 다닐 예정이다. 5월 16일 첫 개장한 가운데 적게는 5팀, 많게는 15팀가량이 참여하고 있다. 각자 생산 제조한 자랑거리 제품을 좌판 벌리듯 펼쳐놓는 한편 사람들 호기심을 높일 문화프로그램도 준비했다. 녹차떡만들기, 물물교환, 책 읽는 밤, 균형잡기 놀이, 딱지치기 등.

논두렁밭두렁은 올 5월 걸음을 뗐다. 강진 농민 15명이 주축이고, 이중 30대가 6명, 50대 2명, 나머지는 40대로 채워졌다. 전라남도 서남권에서 생산하는 농산물로 젊은 농민들이 열어가는 지역 먹을거리 장터를 만들자, 도시와 농촌 간 도농복합 형태의 온오프라인 네트워크를 확산해 유기적인 농산물 판매처를 확보하자, 나아가 농업공동체가 도시공동체를 지원한다는 미래지향적인 꿈을 안고 출발했다.

운영은 젊은 농부 노두섭 단장이 이끈다. 그는 “지역 주민들과 함께 하고 싶어 꾸리게 됐다. 요즘 회자되는 마을만들기를 목표로 한 건 아니지만 자연스레 한 형태로 되어가는 것 같다”고 했다. 기획은 50대 농부 김은규씨가 맡았다. 김씨는 논두렁밭두렁 토요문화야시장은 마음과 마음이 오고가는 농산물 유통, 즉 공동체 복원의 물물교환에 바탕을 뒀다고 했다. 김씨는 “우리 옛 1970년대 문화를 보면 이웃끼리는 돈 주고 사고팔고 안 했거든.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죠. 저는 그런 사회를 죽은 사회라고 봐요. 서로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데 강진 농민들이 일조하고 싶다”고 했다.

물물교환은 농민들 간에도 좋다. 사과장수가 배장수에게서 시중 값으로 배를 사는 것보다 서로 한 개씩 맞바꾸는 게 실제 이익이라는 게 김씨의 설명.

▲ 논두렁밭두렁 장터는 매주 토요일에 열린다.

도농공동체 조성은 광주광역시 내 공유주방을 활성화시키는 일이다. “요즘은 1인 가족이나 2인 가족이 많아지는 시대가 됐잖아요. 외식하거나 반찬을 사는 경우가 많아 건강한 식재료를 찾아보기 힘들죠. 농민들 처지에선 좋은 농산물을 생산해도 좋은 소비로 연결될 수 없고요. 때문에 공유밥상, 공유주방을 열어 참가자들이 그날 가면 서남권 농산물을 재료로 네다섯 가지 반찬을 만들 수 있도록 장을 열어주는 거지요.”

상단에는 강진군으로서는 첫 협동조합인 행복울타리협동조합팀도 참여했다. 이번이 두 번째 참여하는 거란다. 조합을 만든 황칠나라 갈대뿌리 서명선(40대) 이사가 대표로 나와 전남 황칠나무와 관련된 제품들 홍보에 나섰다. 특히 얼마 전 제조업 허가를 받은 6차산업군에 속하는 기능성 조청 홍보에 열중이다. 조합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조청은 황칠나무 가지와 이파리에서 추출한 엑기스에 강진군의 쌀과 보리, 그리고 전남권의 유기농 흑미 등을 섞어 만들었다. 종류도 다양하다. 황칠조청, 갈대뿌리조청, 황칠나무발아현미조청, 황칠나무흑미조청 등.

지난해 12월 22일 전남도지사에게서 인증받은 행복울타리협동조합은 한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지역주민 5가구가 그야말로 ‘먹고 살기 위해’ 자립을 목적으로 설립했다. 강진군 목화길 13-27 소재 행복울타리2단지에 입주해 있는 이들은 입주시점 5년이 지나면 현 거주지를 떠나야 한다. 사업 파산 등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사람들 중 세 자녀 이상을 둔 가정이면 입주할 수 있도록 한 임시공동거주이기 때문. 관에서 젊은 사람들이 와서 살 수 있도록 한 귀농정책의 일환이다.

서 이사는 2008년 미국 리먼 브라더스사태로 시작한 국제금융위기 때 강진으로 내려왔다. 도시로 나가 직장생활을 20년 한 뒤 사업하다 실패해 빈털터리가 되어 농촌으로 돌아온 경우다. 그나마 무상입주권이 생겨 주거가 안정된 것은 천만다행한 일. “안 그러면 가족끼리 뿔뿔이 흩어졌겠죠. 저는 돈 벌러 어디 먼데로 갔을 테지요."

▲ 강진시장&오감통과 논두렁밭두렁 토요문화야시장 장터에서 만난 사람들. 위 왼쪽부터 논두렁 밭두렁을 기획한 농부 김은규씨, 서명선 행복울타리협협동조합 이사 설명을 듣고 있는 마을만들기전국네트워크 참가자들, 그리로 아래 왼쪽 오감통 행사를 둘러본 소감을 전하는 이재이 한국친환경영농조합 대표 등.

처음 2~3년은 힘들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수급자 생활을 할 수만은 없었다. 본격 자립을 위해 대학도 다시 들어갔고 복지사 자격증도 땄다. 자활센터에서 배워 팀장도 됐다. 이 사이 힌트를 얻은 게 함께 입주한 주민들과 협동조합을 꾸리는 거였다. 처음엔 황칠나라 일반음식점으로 시작, 지금은 기능성 조청으로 사업을 확대 중이다. 지역 내 봉사활동도 하고 있다. 강진군 결식아동 밑반찬 만들기 등.

조합의 꿈은 훗날 지금의 무상임대아파트인 행복울타리2단지를 떠나 조합원들끼리 함께 살 수 있는 전원주택을 짓는 것이다. 지역일자리와 경제창출에 보탬이 되겠다는 포부도 있다. “젊은이들이 저희를 보고 희망을 찾아 내려올 수 있는 성공사례를 만들고 싶어요. 조청 만들기에 도전할 수 있는 관광 체험 장도 마련하고 농번기가 끝난 어르신들이 겨울날 도란도란 모여 조청 만드는 일도 함께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그런가하면 토요문화야시장에 참가한 상단 전체가 가진 꿈도 있다. 조선 대표 보부상으로 개성상인과 쌍벽을 이루던 강진 병영상인의 역사적 기운을 이어받아 신보부상으로 자리 잡는 것이다. 순천이 낙안읍성을 복원해 관광육성에 나선 것처럼 강진 역사서에 기록된 병영상인 병영부기 등을 스토리텔링 해 물건을 판매하기 위해 개척하는 과정을 관광산업과 연계, 몸소 잇고 싶은 게 현 신보부상들의 바람이다.

▲ 장터 건너편으로 조성된 강진시장&오감통 복합커뮤니티공간 주변 풍경. 이제 막 개장해서인지 사람들 발길이 적었다.

청사진은 크나 갈 길은 멀다. 이날 장터 분위기는 사람들로 복작대는 대신 유달리 한적한 모습. 장터를 보기 위해 일부러 찾은 마을만들기전국네트워크 운영진 김종현 연극집단 삶은연극 대표는 “관광객 등 시민 접근이 쉬우려면 운영 면에서 좀 더 친절할 필요가 있다. 소리, 냄새는 물론 직접 손으로 만지고 맛볼 수 있는 꺼리들이 있었으면 좋겠다. 공간 자체가 얘기해주는 분위기란 게 있다. 시각적 배치를 한껏 살린다면 오감을 자극하는 장터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문화농업연구소 정대철 소장은 “이제 막 첫 발을 내디딘 만큼 활동 면에서는 아직 미약한 편이지만 전문성과 재원을 갖춘다면 훗날 일본의 마치츠쿠리(마을만들기)처럼 주민이 주도하는 지역경제살리기도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힘을 줬다.

이날 장터 옆쪽에는 군에서 먹을거리, 볼거리, 살거리라는 테마로 기획한 강진시장&오감통 문화공연이 열렸지만 이곳 또한 찾는 발길이 적어 한산했다. 7월 4일 개장했으니 입소문이 덜 탔을 수도 있지만 강진읍 청자축제와 이웃 수산시장 먹을거리로 유명한 마량면 토요놀토시장을 찾는 발길과 견주면 더욱 머쓱한 풍경.

혼인식 참석 차 행사를 둘러본 강진주민 이재이 한국친환경영농조합 대표는 “군에서 예산을 들여 한정식체험관 등 복합커뮤니티공간을 지어 관광객 유치에 나섰지만 전문가 손길을 거치지 않아 콘셉트가 모호해 진 것 같다”며 “다산 정약용과 초이선사 일화 등 강진군 특성을 알릴 소재가 가미됐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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