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오병(아썸 회장·생태학박사)

얼~씨구나 들어간다.
저절씨구나 들어간다.
일자 한자나 들고나 보니
일월의 성성 허 성성 밤중 샛별이 완연 하구나.
이자 한자나 들고나 보니
이팔의 청춘소년들아 백발보고서 웃지 마소.
석 삼자를 들고나 보니
삼 년의 대한 왕가뭄에 빗발조차 더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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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생략)

젊은 날 술자리 끄트머리에 제 흥에 겨워 건들거리며 즐겨 부르던 나의 18번 각설이 장타령의 초반부이다. 한반도에 가뭄이 들기 시작한지 삼 년 째 늦가을에 문득 각설이 타령의 “삼 년의 대한 왕가뭄에 빗발조차 더디구나”라는 대목이 귓가에 자꾸 맴돈다. 출근길에 오랜만에 내린 가을비를 보면서도 삼 년의 왕가뭄에 대한 근심이 가시지 않는다.

우리나라에 가뭄이 들기 시작한지 어느새 3년째다. 기상 관측 이래 한반도 강수량의 평균치는 1300mm/년 정도이다. 기상청의 통계자료에 의하면, 2000년대 들어 가장 비가 많이 내렸던 2003년도가 1861mm로서 평년에 비해 50% 정도 더 내렸고, 가뭄이 극심했던 2008년도엔 988mm밖에 내리지 않았다. 2011년도에 1622mm가 내려 4대강의 녹조를 자연처리해준 뒤에 2013년에 1162mm, 2014년에 1173mm로 강수량이 평균치의 80%대에 머물렀다. 올해 들어 봄 가뭄, 여름 가뭄에 이어 가을까지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아 2015년의 강수량은 평년의 절반수준에도 못 미칠 것으로 예측된다. 이미 지난 봄부터 여름 동안 북한강 수계의 소양호와 남한강 수계의 충주호는 심각한 극 저수위를 나타냈다.
물위에 띄우는 인공식물섬을 주력사업으로 하는 우리 회사는 남달리 가뭄과 홍수에 예민할 수밖에 없다. 홍수가 나면 떠내려갈까 봐 잠 못 이루고, 가뭄이 들면 물가에 설치한 인공식물섬이 호소 사면에 걸치게 될까봐 비상이 걸린다. 소양호와 충주호에 설치한 수십 개의 인공식물섬에도 가뭄 피해가 닥쳐와서 비상이 걸렸다. 비교적 신속한 사전조치나 사후조치를 통해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전사적으로 노력하여 겨우 지켜낼 수 있었다.

부경대 환경대기학과 변희룡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한반도의 가뭄현상은 주기적으로 반복되는데 6년, 12년, 38년, 124년의 주기가 있다고 한다. 고려시대부터의 문헌을 조사하여 살펴본 연구에 의하면 124년 주기의 극심한 가뭄은 한 번도 빗겨간 적이 없고, 38년 주기의 가뭄은 조선시대 이후에만 16번이나 발생했다고 한다. 근세에 들어 가장 극심했던 가뭄은 1901년이었는데 이 해 연강우량은 373.6mm에 불과하였다. 이 가뭄은 임오군란이 일어났던 1882년에 시작되어 29년간 지속되다가 1910년 대한제국이 멸망하던 해에 종료되었다. 이때가 바로 38년 주기와 124년 주기가 겹쳐지는 시기였다는 주장이다.

124년 주기 관찰의 처음은 1281년 고려 말 몽고의 통치시기로서 12년간 가뭄이 지속되었고, 두 번째는 1405년 조선 초 태종 5년에 있었다. 세 번째 주기는 1529년 중종 24년이었고, 네 번째는 1653년 효종 2년, 다섯 번째 주기가 1777년 정조 1년이었다. 여섯 번째가 가장 극심한 피해를 가져왔던 1901년이었다. 이제 일곱 번째 주기가 2025년으로 10년 앞에 다가와 있다는 예측이다. 대체로 절정의 해를 전후하여 짧게는 10년 길게는 15년간 혹독한 가뭄이 지속되었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극심한 가뭄이 계속되면 쌀농사 위주의 한반도 민생은 여지없이 도탄에 빠졌다. 부족한 식량을 놓고 힘 있는 자에 의해 가난한 농민들은 죽음으로 내몰렸다. 정치는 문란해지고 부패가 만연하여 국력이 쇠하게 되고 역병이 돌아 도처에서 민란이 일어나거나 외세의 침탈이 있었다. 내우외환에 시달리게 되어 나라가 망하거나(고려, 조선의 멸망) 외적의 침입(임진왜란, 병자호란)을 당하였다. 10년 이상의 대한(大旱)이 계속되면 식량생산은 반 이하로 줄어들게 되어, 아사, 병사, 전쟁 등으로 전체인구의 30~50%의 감소를 가져왔고 사회는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조선시대 이후 관측된 38년 간격의 주기의 가뭄이 정확하게 일치했는데 17번째 주기가 2013년 시작되어 2015년에 절정을 이루며, 이어서 2025년에 124년 주기가 닥쳐오므로 이때까지 앞으로 10년 더 가뭄이 계속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이 가뭄주기설은 지난 1906년 한반도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후의 통계에 기초한 것이기도 하여 신빙성을 더하고 있다. 1901년의 혹독한 가뭄 이후에 38년 후인 1939년부터 1940년까지 다시 극심한 가뭄이 한반도를 덮쳐 일제의 곡물 수탈에 지친 수많은 농민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 이후 38년 후인 1976년부터 1978년까지의 대가뭄으로 이어졌다. 다음 주기의 시작이 2013년이고 2015년은 그 절정에 갈 것이라는 예측이 변교수의 연구결과이다. 이러한 주기적 가뭄의 원인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으나, 대체로 중국대륙 서쪽에서 발생한 열기가 한반도를 피해 만주 쪽으로 올라갈 때 발생한다고 한다. 한반도를 기준으로 북쪽의 기온이 남쪽보다 높은 상태가 지속되어 한반도에 저기압이 형성되기 어려워 비가내리지 않게 된다고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학설이 맞지 않기를 바란다. 지난 3년간의 가뭄피해도 만만치 않은데 앞으로 10년간 더 가뭄이 들어 2025년까지 간다면 한반도의 상황은 어찌될 것인가? 이 가뭄이 한반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중국과 중앙아시아 터키, 유럽, 미국까지 동시에 가뭄이 온다면 어찌될 것인가. 지구 전체의 식량위기가 올 것이고 이로 인한 인류의 대재앙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2015년 5월 8일 고려대 교수들이 중심이 되어 세계 각국의 기후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중위도권 지역의 기후변화 연구 협의체”를 결성하였다. 필자도 관심을 가졌던 분야라서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중위도권(Middle Latitude Zone)이라 함은 북반구의 인구 밀집지역인 북위 30도부터 45도에 이르는 지역을 말한다. 대부분 북반구 온대지역으로서 인류 역사시대의 80% 이상을 담당했던 지역이고, 현재에도 세계인구의 70% 정도가 이 지역에 살고 있다. 그러나 지난 수세기 동안 이 지역은 지구기후변화의 영향을 받아 75% 정도가 이미 사막화되었거나 진행 중이다.
몽고의 고비사막, 중국 서부지역, 중앙아시아 5개국(아프카니스탄, 파키스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키르키즈스탄), 러시아의 아랄해 연안지역, 터키, 그리스,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북아프리카 5개국, 그리고 미국의 중서부 거대한 지역이 가뭄으로 사막화되어가고 있다. 북반구 중위도권의 기후변화는 인류 전체에게 재앙이 될 것이다.
최근에 반복되며 나타나는 엘리뇨와 라니냐도 유심히 보아야 할 것이고, 지구 온난화로 인한 해수온도의 상승, 빙하가 녹으면서 올라가는 해수면, 그로 인한 생태계의 대변화는 전 세계 과학자들이 지금부터라도 정신 바짝 차리고 온힘을 다해 연구해야 할 것이다. 40억 년 지구 생명의 역사에서 종의 대부분이 사멸하는 대멸종 사건이 다섯 차례 있었지만, 인류사 말기인 현재 닥쳐오는 기후변화가 결코 방심할 수 없는 제6의 대멸종으로 이어질 수 있는 인류위기라는 점에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공감하고 있다.

인류역사에서 한때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으나 비참한 문명의 붕괴를 맞이했던 사례에서도, 가장 근원적인 원인은 기후변화로 인한 장기간에 걸친 가뭄이었다. 마야문명, 잉카문명, 아즈텍문명, 아나사지문명이 모두 수십 년간 혹은 수세기에 걸친 극심한 가뭄으로 인해 붕괴되었다. 대홍수의 피해는 일시적인 피해로 사후에 복구될 수 있지만, 장기간에 걸친 가뭄의 피해는 식량부족 사태를 가져와서 공동체사회 전체의 붕괴를 가져온다. 현대처럼 외부에서 대량의 식량을 수입해 올 수 없었던 시대에 식량의 부족은 항상 부족한 만큼 누군가는 굶어 죽어야만 했다. 한 사회와 문명권을 지탱하는 가장 기초적인 제한요소는 식량이었다. 비옥한 토지와 곡물생산에 적당한 기후는 잉여농산물을 생산하고, 비축된 경제력을 토대로 문명의 번성을 꾀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기후가 건조해지고 곡물 생산이 현저히 줄어들게 되면 사회는 갈등 국면에 접어들어 계급 간의 분열, 부족 사이의 분쟁, 국가 간의 전쟁을 통해 개체 수 조절을 할 수 밖에 달리 방도가 없다. 이것이 생태의 원리이다.
벌이나 개미 등의 집단사회생활을 하는 곤충들은 식량이 절대 부족한 상황이 오면 Ecocide(생태적 자살)를 통해 개체 수 조절을 하는 지혜를 터득하여 2억 년 이상을 생존해왔다. 그러나 고등 영장류인 인류는 식량의 부족을 대개는 전쟁이라는 Genocide(같은 종끼리의 대량 학살)로 해결하여 왔다. 식량의 분배가 힘센 자 우선순위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남미에서 찬란한 문명을 이루었던 잉카제국의 예도 장기간에 걸친 가뭄이 계속되어 옥수수의 생산량이 급격히 줄어들자 정치사회적 혼란에 휩싸였다. 일 년에 5~6모작이 가능하던 시절 잉여 노동력을 이용해 거대한 제국을 이루었던 지배세력은 식량부족으로 인한 민심의 이탈을 막기 위해 극단적인 공포정치를 하였다.
잉카문명 말기에 피라미드 피의 제단에서 날마다 10분 간격으로 사람의 목을 자르고 심장을 꺼내는 의식을 대중 앞에서 행하여 1년에 2만 명 이상을 희생 제물로 바쳤다. 이때 희생자들은 힘없는 전쟁포로거나 난민들이었다. 기근과 질병, 통치자의 공포정치는 잉카주민들을 죽음의 고통으로 몰고 가서 사회체제는 내부적으로 붕괴의 길을 갔다. 1531년 스페인의 피사로가 이끈 180명의 기병대가 잉카제국에 도착했을 때, 기근과 공포정치에 염증을 느낀 잉카인들은 구세주가 나타났다는 환상에 사로잡힐 정도로 문명은 이미 내부에서부터 붕괴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조경업계는 안팎으로 큰 시련에 처해 있다. 건설관련법의 개정 또는 신설을 통해 인접 분야에서 조경업역을 침범하여 우리 시장은 날로 줄어들 수밖에 없는 위기에 처해있다. 건설시장 자체도 점차 줄어들어 가고 있는데다가 업역의 축소로 인한 절대물량의 감소로 수많은 조경회사들이 이미 쓰러졌거나 폐업의 위기에 처했다. 게다가 가뭄으로 인해 이식한 수목의 하자율이 급증하면서 설상가상의 고통을 겪고 있다.
수많은 조경회사들이 살아남기 위해 구조조정을 하여 직원 수를 줄이고 있고, 신입사원은 뽑을 엄두조차 내지 못하니 수년 동안 조경학과 졸업생들의 취업은 급격하게 어려워지고 있다. 우리 모두 정신을 바짝 차리고 엄혹한 현실을 직시하여야 할 것이다. 2025년까지 앞으로 10년간 더 가뭄이 계속될지 모른다는 우울한 메시지는 차마 던지고 싶지 않지만, 현실의 통치자들이 가뭄대책은 일언반구도 없이 때아닌 국정교과서 논란으로 사회를 이념논쟁으로 몰고 가는 현실 앞에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권오병 집필위원(아썸 회장·생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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