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제비꿀(채집자 손탁), 싱아(손탁), 도라지(채집자 분게) <사진제공 국립생물자원관>

박완서의 소설에도 언급된 ‘싱아’를 포함, 구한말 채집된 한반도산 관속식물 표본이 100년만에 한국땅을 밟았다.

국립생물자원관은 러시아 코마로프식물연구소와 공동연구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구한말 채집되어 코마로프식물연구소 수장고에 100~130년간 보관돼 있던 한반도산 관속식물 표본 100점을 지난달 30일 기증받았다고 밝혔다.

관속식물 표본 100점은 주로 1886년부터 1902년 사이 조선에 머물던 러시아와 폴란드의 전문 채집가, 의사, 통역사에 의해 인천 제물포와 서울에서 채집된 후 코마로프식물연구소에 보관돼온 표본이다.

표본은 제비꿀, 싱아, 도라지, 시호, 층층잔대 등 과거 한반도의 생물다양성을 파악하고 한반도 생물종 분포 변화에 대한 연구자료로 가치가 높다.

표본 중 26점은 앙투아네트 손탁이 창덕궁, 탑동(현재 낙원동), 진고개(현재 충무로), 효창동 등 서울에서 채집한 것으로 서울에서는 현재 찾아보기 어려운 싱아 4점이 포함돼 있다. 현재 코마로프식물연구소에는 손탁이 1893년에서 1895년까지 주로 서울에서 채집한 표본이 현재까지 약 340점 발견됐다. 손탁은 채집 당시 상세한 지명을 기재해 구한말 서울의 식물상을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앙투아네트 손탁은 한국 최초의 서양식 호텔인 손탁호텔의 지배인으로 아관파천 때 고종에게 커피를 진상한 것으로 유명세를 탄 인물이다. 또 그가 채집한 싱아는 전국 산기슭에 존재하나 서울에서 찾아보기 힘든 식물로 소설가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서 언급된 종이다.

표본 중 52점은 유명한 러시아 식물학자인 분게의 아들인 알렉산더 알렉산드로비치 분게가 구한말 개항장으로 지정되었던 제물포에서 1888년과 1989년에 채집한 것들이다. 나머지 22점은 폴란드인 채집가 칼리노브스키 등이 비슷한 시기에 인천과 서울에서 채집했다.

국립생물자원관은 이번에 기증받은 구한말 관속식물표본 100점을 기후변화에 따른 생물분포 연구 등의 연구 자료로 활용할 계획이다.

현재 우리나라 자생생물은 19세기 초부터 외국인에 의해 채집되어 반출된 후, 세계 유수의 박물관과 표본관에 소장돼 있다.

국립생물자원관은 2008년부터 최근까지 전 세계 10개국 27개 기관에 소장되어 있는 한반도산 생물표본 3만8000점을 확인하고 화상자료를 확보했다. 이미 반출된 생물표본을 국내로 반입하는 것은 국제 관례상 어렵기 때문에 정부는 국외기관과 공동연구 등을 통해 기증을 유도하고 있다.

국립생물자원관은 2008년 일본국립과학박물관, 2010년 헝가리자연사박물관, 2014년 큐슈대 등에서 현재까지 총 4820점의 한반도산 생물표본을 기증받은 바 있다.

김상배 국립생물자원관장은 “이미 반출된 한반도산 표본에 대해 계속적인 추적조사와 자료를 확보하고 관련 기관과의 상호협력을 통해 지속적인 기증을 유도할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러시아 코마로프식물연구소는 러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과학연구기관으로 18세기부터 전 세계에서 수집한 600만 점 관속식물 표본을 소장하고 있다. 이곳에서 소장하고 있는 1800년대 후반부터 1900년대 초반에 걸쳐 채집된 한반도 식물표본은 국내는 물론 국외 소재 표본관에서도 매우 희귀해 학술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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