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혜신의 사람 공부 / 정혜신 지음 / 창비 펴냄 / 150쪽 / 7천원 / 2016년 7월 찍음

[주간힐링 3호=2016년11월 3일]

요즘 공부 시리즈가 유행하고 있는 가운데 ‘사람 공부’라는 책이 나왔다.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가 쓴 책이다. 그녀는 ‘거리의 의사’로도 불린다. 진료실이 아닌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있는 곳으로,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후에는 안산 현장으로 달려가 피해자와 가족들을 만났다.

트라우마 심리치유 전문가로서 그동안 마음에 상처를 받은 많은 사람들을 만나오면서 정신과 의사를 넘어 진정한 치유자로 거듭날 수 있었음을 고백하고 있다. 이 책은 세월호 참사 이후 안산으로 거주공간을 옮겨 ‘치유공간 이웃’을 운영하면서 느낀 것을 중심으로 기록됐다.

그래서 읽는 내내 아프지만 쉽게 읽히기도 한다. 의학지식에만 의존하지 않고, 인간이 가진 심성에 주목하며 거기에서 해답을 찾고 있다는 점은 우리에게 생각할 여백을 주고 있다.
 

“치유란 그 사람이 지닌 온전함을 자극하는 것, 그것을 스스로 감각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그래서 그 힘으로 결국 수렁에서 걸어나올 수 있도록 옆에서 돕는 과정이 되어야 하는 거죠”

저자의 조언을 들으니 꼭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우리도 곁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있을 것만 같다. 이 책에서는 의학지식, 심리상담을 학문으로 공부한 전문가들이 쉽게 빠져드는 오류에 대해서도 지적하고 있다.

정부는 세월호 참사 당시 막대한 규모의 치유상담소를 팽목항과 안산시 곳곳에 운영했지만 운영성과는 크지 않았다. 정신의학이나 심리상담을 배운 전문가들이 대거 현장에 내려왔지만 대부분 그동안 배운 학문적 토대로 접근을 하다 보니 오히려 피해자, 유가족들에게 반발을 산 측면도 있다고 한다. 수백 가지 문항으로 된 심리검사지를 나눠주고 상담 받으러 와야 한다고 심리치료를 독려하고 다녔음에도 오히려 점점 화를 내는 유가족들이 늘어나기만 했다는 설명은 현장의 특성을 반영하지 않고 트라우마 치유의 교과서적인 방법을 그대로 따라 했던 결과로 나타났다.

저자는 “트라우마 피해자는 정신과 환자가 아니다”라고 얘기한다.

세상이 무너졌고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럽지만 단지 힘든 상태에 처한 것이라고 느끼도록 해야 극복해나갈 힘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심리상담이나 약물적 치료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트라우마 피해자들에게 앞으로 닥쳐올 증상들에 대해 미리 알려주고 그런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덜 당황하고 덜 압도될 수 있도록 돕는데 주력했다고 한다. 그러면 훨씬 견디기가 나아졌고 덜 힘들게 건너갈 수 있었다.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닥쳤는데 스스로도 자기가 이상해졌다고 규정해버리면 어떻게 살 수 있겠어요. 세상이 무너졌는데 나도 다 망가졌구나, 이렇게 느끼면 사람은 세상과 이어져 있는 끈을 다 놓게 될 수밖에 없어요. 감당할 수가 없으니까 결국엔 자기 삶마저 놓아버리는 거죠. 그래서 미쳐도 괜찮다, 미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는 미치는 게 정상적인 반응이다, 괜찮다, 당신이 엄마라서 그런 거다, 계속 그런 메시지를 주어야 해요. 내가 비정상이어서 이런 게 아니구나, 내가 엄마라서 이런 거구나, 미쳐도 되는구나, 지금 내 상황은 미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거구나, 그런 확인을 받아야만 자기 자신과 자기 상태에 대해서 비로소 이해받는 느낌이 들지 않겠어요?”

유명 정신과 전문의였던 저자는 국가폭력으로부터 희생당한 고문 피해자를 대상으로 집단상담을 맡으면서 국가적 트라우마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한다. 2011년에는 쌍용자동차 대규모 해고사태가 발생하면서 노동자와 그 가족, 아이들을 위한 심리 치유공간 ‘와락’을 만들어 활동했다. 그리고 세월호 사태가 발생한 뒤에는 안산에서 치유공간 ‘이웃’을 운영하며 활동하고 있다.

이 책의 배경이 되고 있는 안산시 단원구에 위치한 ‘이웃’에는 특별한 배려들이 있다. 지친 세월호 피해자와 유가족들의 휴식을 위해 공간이 좌식으로 구성돼 있다는 점인데 ‘상담할 방이 있는 마을회관’ 모습으로 설계했다고 한다. 상담하다보면 지칠 만큼 울 때가 많고 그러다보면 기력이 다 빠지니까 누워야 할 때도 있고, 탈진해서 잠이 들기도 하기 때문에 병원 진료실 보다는 마을회관이라는 개념이 더 적절했다는 것이다.

치유공간 대부분은 함께 모여 밥을 먹는 마루와 부엌이 차지하고 있으며, 늘 유가족들이 함께 밥을 먹는다. 식사는 집밥처럼 활동가들의 도움으로 준비되며 각상으로 차려진다. 하루에 많게는 백여명이 밥을 먹기도 했는데 그래도 식판이 아닌 각상을 고집했다고 한다. 차가운 길바닥에서 종일 농성하고 물대포 맞고 김밥으로 때우다 오는데,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개별적인 인간으로 존중받는 느낌을 전달하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도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밥은 치유이다.

‘이웃’에 와서 엄마들은 뜨개질을 열심히 한다고 한다. 그 무엇으로도 다스려지지 않던 가장 고통스러운 생각들이 뜨개질에 집중하면서 조금이나마 덜어지게 되는 치유적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그렇게 잠못 이루고 새벽까지 뜨개질을 하다가 쓰러져 잠이 들기도 하는데, 어느 날엔가 문제가 생겼단다. 처음 시작할 때 뜨개질 실값을 1년에 3백만 원 정도 책정해놨는데 어느새 5천만 원을 훌쩍 넘겨버린 것이다. 대책회의를 하면서 ‘이건 실값이 아니라 약값’이기 때문에 제한 없이 쓰기로 결정했다는 일화를 남겼다.

이 책은 트라우마에 대한 이해를 넓게 해주고, 상담치유 과정과 방법에 대해서도 쉽게 알 수 있도록 해준다. 그것이 아주 특별한 경우에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인들에게 점점 더 많이 다가오고 있다는 상황도 시사해준다.

“세월호 유가족까지 가지 않더라도 우리 사회는 사회적·개인적 트라우마가 무척 많은 곳입니다. 자살하는 사람이 한해에 1만5천명 정도라고 하니 그 가족과 친한 친구까지만 잡아도 매년 수만명의 사람들이 극심한 트라우마에 노출되는 셈입니다”

트라우마를 일상적으로 맞딱뜨려야 하고 준비해야 한다는 것은 비극이지만, 그 상황을 인정하고 서로 뜻을 모아 이겨낼 수 있는 사회적 방법을 마련하는 것은 중요한 과제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접하게 되는 심리적 갈등도, 치료 영역이 아닌 치유의 영역에서 먼저 풀어 보려는 노력도 중요하다.

누구에게나 크든 작든 마음의 상처가 온다. 요새는 개인적 트라우마에서 국가적 트라우마까지 다양해지고 있다. 그럴 때에는 스스로 또는 누군가 곁에서, 잘 치유될 수 있도록 역할을 하는 게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모두 ‘사람 공부’ 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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