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놀이동산에서나 볼 수 있는 그림을 그렸고,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설문조사는 깊이를 가지기 어렵다. 또 아이들은 설계 안을 신기해했지만, 비판적으로 사고하지 못했다.’

조경작업소 울(소장 김연금)은 지난 22일 어린이 놀이터 참여 디자인의 필요성에 대한 주제로 오픈자문을 주최했다. 이 자리에는 김연금 소장과 지정우 EUS+건축 공동대표, 정수진 수원시정연구원 도시디자인센터장이 참석해 2시간에 걸쳐 참여 디자인의 중요성과 그에 따른 문제점들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이날 논의된 주요내용들을 섹션별로 정리해 본다.

▲ (왼쪽부터) 지정우 EUS+건축 공동대표, 정수진 수원시정연구원 도시디자인센터장, 김연금 조경작업소 울 소장. <사진 지재호 기자>

어른도 표현은 서툴다

정수진 : 얼마 전 과제를 진행하면서 주민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 물었다. 그런데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설명을 못하더라. 자기 또는 마을에 뭐가 필요한지,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얘기하는 자리에서 마치 누군가 주입을 시킨 것처럼 말을 했다.

부천에서 도시재생 작업을 하다가 우연히 여성청소년센터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이들은 아이들과 같이 지난 5년 동안 마을조사활동을 하고 함께 공원에 가서 동네 아이들과 놀아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무엇이 동네에 필요한지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막힘없이 나열했다. 내용이 구체적이라 관계기관 담당자들도 경악했고 일부는 주민들보다 낫다며 감탄을 했다.

5년 동안 지속적으로 교육이 진행됐지만 자신이 살고 있는 부천이라는 공간을 바꾸고 싶어 하는 열망을 순수하게 표출하는 모습에서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이러한 점으로 볼 때 지역 주민들에 대한 교육은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지정우 : 교육을 받아서 교육을 받은 거에서만 표출하는 게 아니라 그 방법론을 익혀서 자기가 가지고 있었던 희망과 원하는 바를 조금 더 효율적으로 표현하게만 만들어 내는 게 필요하다.

직접 만드는 것은 전문가 영역이라서 디자인하는 분들이 감안해서 만들고 일종의 피드백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일반 유저들이 그것을 보고 다시 깨달아야 한다.

주민과 어린이들 생각이 어느 정도 대상에 대해 평소에 생각을 했느냐에 따라 의견 정도의 차이가 큰 것 같다. 어린이들은 대상 공간에 대해서 평소에 많이 생각을 했기 때문에 많은 요구사항이 있는 것이다.

어른들은 무관심하게 다니다가 얘기를 하라고 하니까 피상적인 얘기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어른들의 얘기는 결과가 뻔하게 나오는 것이다. 평상시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들이 모여야 아쉬웠던 내용들을 끄집어 낼 수 있다.

참여 연령대의 기준

김연금 : 아이들과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정도가 아주 어린 아이들은 집중력이 떨어져 어려운데 4학년 이상 정도는 돼야 할 것 같더라.

정수진 : 4학년 이상은 할 만한 것 같다. 한 사례가 있는데 나는 5~6학년을 중심으로 진행한 바 있다. 지난해 여름에 모집형으로 해서 진행했는데 5학년은 관심도 높아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다만 6학년생들은 순수한 관심과 목적이 아니라 학교의 예쁜 아이가 신청하니까 따라오는 형태였다.

4~5학년 정도의 아이들이 잘 하는 것 같다. 아이들은 공간에 대해 구석구석을 잘 알고 있던 반면에 어른들은 제한된 공간 소비를 하고 있어서 오히려 아이들보다 모르는 실정이다.

김연금 : 4~5학년 아이들과 소통을 하는데 있어서 아이디어를 끌어내는데 크리에이티브해져야 하는 것 같다. 그림을 그려서 질문을 잘 해야 하는데. 디자이너가 끌고 가는 형상이 되지 않나, 이 말은 결과물을 내야 하다 보니 아이들 의견에서 시작했다 해도 결국은 아이들보다는 디자이너 의견이 반영되지 않나 생각이 든다.

지정우 : Case by Case 인 것 같다. 일반 건축구들을 예로 보면 ‘집을 짓고 싶어요’라고 말을 하면 ‘어떤 집이 좋으세요?’라고 말하는데 막연한 질문에 막연한 답변이 오고가게 된다.

‘어느 코너 또는 공간을 좋아하는지, 왜 좋아하는지’ 등 구체적인 질문을 던진다면 왜 좋아하고 어디를 좋아하는지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는 식의 답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아이들도 사실 ‘어떤 놀이터가 좋아?’라고 물으면 미끄럼틀과 시소, 그네 등 놀이기구들만 나열하게 된다. 어느 TV에 김제동씨가 MC로 출연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사람들이 얘기를 하게끔 유도를 잘 한다. 3자도 관련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을 때 ‘그랬군요’라며 공통적인 관심사로 끌어 들인다.

단순히 청취하는 게 아니라 디자인 안의 모델이나 스케치를 보여주며 자신의 의견이 반영되고 있구나라고 판단하게 해 주면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하게 된다. 발전의 과정들, 연속성 등이 필요하다고 본다.

▲ <사진 지재호 기자>

공간에 상상을 더하다

지정우 : 최근에 세이브더칠드런과 워크숍을 한 바 있다. 여러 과정을 거쳐 아이들을 대상으로 개인별로 2D 작업을 했다. 대상지 그림을 나눠줘 그림을 그리도록 하니 미끄럼틀과 트램폴린을 하는 아이들 등을 그렸다. 그 다음 몇 명씩 모아 모둠을 했고 그림들을 모아 그림이 아닌 텍스트로 의견을 모으도록 한 다음 잡지의 사진과 벽지를 이용해 콜라주를 만들어보라고 했다.

그림이 아니라 종이를 잘라서 하다 보니 그림보다는 어렵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고, 표현의 한계를 느끼고 원래의 생각과는 달라지는 감을 익히게 된다. 이렇게 완성된 2D 콜라주를 가지고 3D로 모형을 만들도록 했다. 그럼 여러 가지의 재료들로 놀이 시설들을 표현해 나갔다. 이후 시간에는 재료도 한정시키고 놀이시설을 모두 제외하고 공간을 만들어보라고 했다.

아이들은 난감해 했지만 5개의 모둠이 전혀 다른 추상적인 공간을 창조했다. 그렇게 조금 단계별로 유도해 줄 수 있는 장치들을 나름대로 했더니 아이들은 바로 적응하면서 새로운 것들을 생각해 나갔다.

정수진 : 결과물과 아이들의 즐거움 자체는 3D에서 나오기는 하는데 3D는 자신의 욕망이 그대로 투사되는 경향이 있다. 사람은 재료를 만났을 때 개인의 욕망이 즉각적으로 투사가 된다. 이것을 오히려 거리를 두고 의사결정을 하고 욕망을 상호간의 욕망 조정에 들어가게 되기 때문에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게 2D 작업인 것 같다.

반복과 패턴의 이해

지정우 : 일반적인 미끄럼틀이나 그네, 트렘폴린 이런 구성으로 아이들이 만들어보게 한 다음 추상하게 한다면 어려워 한다. 때문에 원리를 알려준 게 있다. 그것은 반복과 패턴이다. 보통 패턴이나 반복에 대해서는 아이들이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얼마나 많이 반복되는데 있어서 우리가 좋다고 느끼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부분에 대해 설명을 한다.

1시간 30분이라는 짧은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약 10분 정도 강의하고 2D로 그림을 그려 마인드 맵을 그리게 했다. 그 다음 패턴으로 들어가 종이컵과 클립을 가지고 모듈을 만들게 했다. 7개씩 하나가 모듈이 돼 어떤 형태로 만드느냐에 따라 변형되는 것을 다양하게 만들도록 했다.

그 다음 큰 바구니를 가지고 종이컵과 같이 만들어가는 작업을 했다. 누군가는 옆에서 잡아주고, 묶어주고, 형태를 만들어 가면서 직접 실제화 되는 과정을 보면서 아이들은 큰 희열을 느끼게 된다.

의견을 받고 워크숍을 잘 하는데 끝나는 게 아니라 의견이 반영돼 실제 사이즈의 공간이 아이들 손으로 만들어지는 것만으로도 3D로 만드는 것보다 호응이 매우 높다.

정수진 : 반복과 패턴을 알려주고 싶어서 지난해 여름에 아이들에게 강의를 한 바 있다. 완전 망했다. 강의를 하면서도 아이들이 재미없어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뭔가 동기부여를 줘야 디자인도 성장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이런 뭔가가 반복과 패턴이 필요하다고 생각을 한 것이다. 주제를 반복해야만 충분히 솔루션이 나올 수 있다. ‘너희가 문제를 실제로 해결하려고 하지 말아라’는 것을 가르치고 싶었는데 강의자료 준비도 망해서 ‘여기 왜 있지?’하며 멘붕이 오면서 다시는 하지 말아야지 반성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조형물이든 도시공간이든 패턴에 대해서는 이해를 시켜줘야 한다고 본다. 최소한 디자인을 할 때는 형태를 가지고 놀아야 하는데 최소한 모듈을 가지고 그것을 반복하고, 반복하다보면 패턴이 된다는 것을 지정우 대표는 이해시키는 방법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반면에 나는 패턴만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김연금 소장은 이번 오픈자문 마무리 발언에서 “우리가 물어야 될 질문은 ‘애들이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놀 수 있느냐’하는 것이다. 획일화된 놀이터를 벗어나자는 질문이 아니다. 오히려 아이들이 어떻게 놀게 하고, 좋은 도시를 만들어 줄 것인가 하는 질문을 해야 한다”며 “획일화된 놀이터는 아이들이 재미가 없다는 의미고 다양한 원인 중 하나일 뿐이다. 발전적이지 못하고 발목을 더 잡는 문제의식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말했다.

이어 “동전이 떨어진 곳은 저쪽인데 여기가 밝다고 여기서만 찾는 게 아닌지 생각해야 한다”며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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