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부식(본사 회장·조경기술사)

낙서는 ‘글씨나 그림 따위를 장난이나 심심풀이로 아무데나 함부로 쓴 것’이라는 사전적 의미보다 훨씬 큰 파장으로 다가온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도스토예프스키의 원고나 공책을 보면 여백에 낙서를 썼고, 20세기에 이르러 무의식의 발현에 대한 관심과 인간본성의 이해라는 각도에서 낙서는 많은 관심을 가져왔다. 그래서 낙서는 유머와 해학, 시대의 자화상, 저항의 표시 등이 아우러져 표현의 방식으로 이용됐다. 지금 화제를 모으고 있는 영화 ‘군함도’에 등장한 탄광 갱내에 새겨진 ‘어머니 보고 싶어’ ‘배가 고파요’ ‘고향에 가고 싶다’ 등의 낙서는 보는 이의 마음을 애잔하게 한다.

낙서가 가지는 익명성 때문에 의사표현의 제한이 없는 장점이 있어서 신문고 역할과 즐거움을 선사하는 반면에 무분별하고 어리석은 영웅심을 만들어 기존의 사물에 대한 가치를 하락시키며 분노를 불러오기도 한다.

2013년에 3천여 년 전에 세워진 이집트 문화재인 룰소르신전에 '丁锦昊到此一游(딩진하오 왔다감)'이라고 새겨진 낙서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안그래도 중국관광객의 에티켓 문제가 자주 도마 위에 오르는 상태라 비난이 더 컸다. 이 철없는 낙서에 중국인들조차도 “정말 개념 없다", "중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다", "국가 이미지에 먹칠을 한 딩진하오는 도대체 누구냐?"며 비난을 퍼부었다. 이 일이 계기가 되어 중국은 문화재 훼손 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했다.

국격까지 거론되는 문화재에 대한 낙서는 우리나라도 자유로울 수는 없다. 대한민국 전통정원의 백미라고 일컫는 담양 소쇄원은 국가사적 304호로 지정된 문화재다. 소쇄원을 오르는 길 양옆에 서있는 대나무는 소쇄원의 분위기를 살려주는 중요한 진입부인데 대나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녀간 사람의 이름과 사랑타령 낙서에 아연실색을 하게 된다. 더욱 낙담이 되는 것은 광풍각과 제월당 흙벽에 긁어 놓은 낙서들이다.

이렇게 부끄러운 행태는 수출까지 하고 있다. 해외 유명 관광지와 문화재에 쓰여 있는 한글 낙서는 그곳을 찾는 다른 한국인에게 쥐구멍을 찾게 한다. 오죽하면 스페인 동상에 점철된 한글낙서 때문에 스페인 국민들이 한국관광객은 오지 말라고 시위를 했을까.

이달 초에 일본 전역이 한 사찰에 그려진 낙서 때문에 발칵 뒤집혔다. 나라현 도다이지(東大寺) 내 불당인 홋케도(法華堂)에 있는 라이도(禮堂)에 가로 40cm, 세로 10cm 크기의 ‘임채현’이라는 한글 글씨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도다이지는 8세기에 세워진 사찰로 일본의 국보로 지정되어 있으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돼 있다. 이 사건이 알려지자 중국 관광객의 이집트 문화재 낙서 때처럼 한국인의 자성과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일본에서도 화가 난 네티즌들이 비난을 퍼부었는데 그 중 한 네티즌의 반응이 폐부를 찌른다. “만약 일본인이 대한민국의 국보인 남대문 기둥에 일본인 이름을 써놓았다면 당신들 기분은 어떻겠는가.”

이 낙서의 발견으로 ‘임채현’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은 마음이 편치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처럼 국내외 문화재에 대한 가치와 소중함을 지키지 못하고 훼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문을 해본다. 교육의 부족이라는 생각을 해보지만 일본 도다이지 낙서 사건 발생과 비슷한 시각에 대한민국 국보인 경주 첨성대를 타고 올라가서 음주 셀카를 찍은 여성들이 대학생이었다는 사실에 충격이 크다. 그들이 첨성대가 얼마 전의 지진으로 인해 불안정한 상태라는 사실을 모를 리가 없다는 생각에 충격이 더하다. 지성의 상아탑에서 교육을 받고 있는 대학생의 행동이라고 하기엔 너무 어이가 없고 망신스럽다.

낙서 사건을 통해 바라본 문화재 훼손 현실이 안타깝고, 처벌 강화만이 해결책인지 고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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