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경 강릉원주대 교수

기로에 섰다는 말이 있다. 기로(岐路), 갈림길

山을 부수로 쓰는 것을 보니 산 속의 갈림길을 보고 만든 모양이다. 그런데 기로에는 항상 따라다니는 말이 있다. 생사라든지 운명이라는 말이다. 아마도 갈라졌다가 다시 만나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길을 가는 것, 그것도 한 쪽은 죽음이나 그것에 준하는 상태에 이르는 것인가 보다.

조경계는 2010년 즈음을 정점으로 하락세가 뚜렷하다. 어쩔 수 없는 사회발전의 과정이라고 봐야 하기 때문에 이것으로 자책까지 할 필요는 없다. 우리에게는 20년이 조금 넘었고 세계적으로는 올해가 창설 70주년이 되는 OECD는 선진국의 상징인데, 대한민국이 회원국이 되었다는 것은 훌륭한 로비의 결과이거나 단순한 경제력 확대의 결과가 아니었다. 세계의 관련기관이 인정하는 각종 지표가 그에 합당하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꼭 평가의 지표는 아니더라도 상대적인 가치를 비교하는 것들이 있다. 늘 1위를 차지하는 자살률이나 교통사고율 또는 바닥수준인 행복지수 등이 그것인데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건설이 주요 관심대상일 수밖에 없다.

건설은 많은 자본이 투입되는 분야인지라 잘사는 나라에서 하는 일처럼 보이지만 선진국의 판단기준은 결과에 있기 때문에 당연히 차지하는 비율이 작을 수밖에 없다. 확실히 비교는 해보지 않았지만 이것도 상위권일 것이다. 400조원을 넘긴 올해의 국가예산에서 건설분야에는 19조원이 배정되었으니 2017년 대비 3조원 이상 줄어들었고 증감률로는 -14%를 상회한다. 총액에서 잠시 오른 적도 한 해 있었지만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OECD 회원국의 평균에 근접하고는 있지만 아직 약간의 격차가 있는 것으로 보아 얼마간은 벼랑 쪽으로 몇 발짝 더 가야할 것이다.

2010년경이 정점이었다면 그때를 조경계의 갈림길로 봐도 좋겠다. 그런데 갈림길은 원래부터 있는 것이고 어느 정도의 거리가 되면 눈에 보이기도 하는 것은 물론 가끔은 이정표도 있다.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의 일이지만 나처럼 학교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훨씬 민감하게 먼저 보는 이정표가 있다. 출산율과 함께 우리에게는 지긋지긋한 용어가 되어버린 ‘학령인구’ 그리고 그것의 감소인데, 20여 년 전부터 스물스물 기어 나오기 시작하더니 이젠 턱밑까지 차올라 숨통을 조이고 있다.

당시를 되돌아보면 조경은 신생분야로 앞길이 훤히 펼쳐져 적어도 학생정원에 대한 충원률이나 취업률에서만은 다른 학과로부터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절벽이라는 표현을 쓸 만큼 절대적인 인구의 감소를 정면으로 마주한 지금은 우리뿐만 아니라 국가전체가 돌덩어리를 지고 늪에라도 들어간 느낌이다. 감소의 원인판단을 이상한 쪽으로 가져다 붙여 마음이 불편하기는 하지만 혜안을 내기가 어려워 어쩔 수 없다는 것이 더욱 답답할 뿐이다. 갈림길이 원래부터 있었던 것이라면 적어도 이정표를 지나면서 岐路에서는 어떻게 할지를 준비했어야 한다.교육부에서는 이제야(몇 년 되기는 했지만) 허둥대며 대학에 칼날을 들이대고 있다. 우리는 조경진흥센터(당시의 용어임)를 만들기 위해 모금운동을 했었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1년 정도의 실적을 보니 어디에도 내놓기에 부끄러운 수준이었다. 센터의 설립이 정답인지는 모르겠으나 몇 가지 안 되는 대안 중의 하나는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들고 잘만 되었다면 그 행위만으로도 희망의 신호라 믿을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위기를 위기로 생각이나 하고 있는가? 그 위기가 나의 것이라기 보다는 내가 속한 분야의 것이기 때문에 내 관심범위를 벗어난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예전의 신입사원은 캐드는 기본이기 때문에 조건도 아니었고 포토샵이나 일러스트를 쓸 줄 알고 엑셀이 가능하면 쓸만한 정도, 3D 프로그램이라도 다룬다면 최고의 평가를 받았다. 그러던 것이 최근에는 그냥 오면 가르치겠단다. 조건이 없다는 뜻인데, 다른 분야보다 남녀의 평등이 훨씬 먼저 잘 이루어졌다는 성과도 있지만 채용할 자원이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사실이 씁쓸할 뿐이다. 물론 모든 회사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세상이 변한 것만은 확실하다. 이런 현상은 보내는 입장이 한 발 먼저 느끼게 마련이다.

4학년 초기까지는 어디든 조경관련업체로의 진출을 희망했다가 정작 2학기가 되면 갖가지 이유를 대고 입사를 거부한다. 몇 년간 반복되는 현상에 대해 면담을 통해 얻은 가장 큰 결론의 하나는 조경업계에서의 생활에 대한 두려움이 아닌가 한다. 선배들로부터 전 해들은 직장생활의 어려움, 많지 않은 연봉 등이 아름다운 앞날을 그릴 수 없게 했는지 그들의 출발을 가로막고 있다. 늘 힘들기만 했던 것도 아닌데 보통의 사람들은 즐거운 기억보다는 힘들었던 시간을 확대하여 축적시키는 기술이 있는 듯하다. 특히, 자신의 경험을 다른 사람에게 전할 때는 마치 정글 같은 전장을 누빈 전사라도 된 듯이 착각을 하면서 말이다. 설상가상으로 현 정부의 ‘대규모 공무원 증원’ 발표는 대부분의 대학생들에게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처럼 보이게 하기에 충분했다. 많지는 않지만 전문인으로 만드느라 그 오랜 시간 소리 없는 전쟁으로 보냈는데, 한 순간에 노량진행 전철 속으로 밀어 넣고 있다. 그래 놓고는 취업률을 대학평가의 잣대로 쓴다니 참...

누구의 잘못이라 할 것도 없이 과거의 우리가 앞만 보느라 놓친 것들이 몰래 낳아놓고 간 뻐꾸기 알처럼 부화를 한 후 우리를 둥지 밖으로 밀어내고 있는 느낌이다. 사장님들이 설계실 그리고 현장에서의 하루생활에 1시간만이라도 희망을 볼 수 있는 틈을 주었더라면, 교수님들이 한 학기에 한 번만이라도 업계의 누군가와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더라면, 현상설계 경기에서의 우승자들이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정신을 1%만 발휘했더라면 그리고 그들에게 시기와 질투보다는 진정성 있는 축하의 귓속말이라도 한마디 해주었더라면, 단체의 장들이 자리에 냈던 욕심을 반만이라도 두 발에 양보를 했더라면, 야근과 철야는 했지만 해외여행의 즐거움과 시공현장을 본 후의 성취감을 후배들과 공유할 수 있었더라면...지금의 우리는 기로를 앞에 두고 흔들릴 이유가 없었거나 오히려 당당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골든타임은 지난 듯 하지만 갈림길은 한 번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후회스럽기만 했던 첫 번째 기로를 두 번째에도 반복해서는 안되지 않겠나! 한국조경신문도 기로 앞에 있었던 것으로 안다. 두 번째가 없으면 가장 좋겠지만 이정표가 보일 때는 첫 번째의 기로가 기회였음을 확인하는 순간이 되길 바란다.

저작권자 © Landscape Time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