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택주 한택식물원장(문화융성위원회 위원)

지난 7월 25일 대통령 소속 자문위원회인 ‘문화융성위원회’가 출범했다. 문화융성위원회는 문화의 중요성과 역할을 올바로 인식하고 그 가치를 일상생활에 구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문화융성위원회는 20명의 위원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대부분 음악, 미술, 연기자 등 예술인이 참여하고 있다. 그 중에 이택주 한택식물원 원장이 있다. 이택주 원장은 1979년 국내 처음으로 식물원을 만들기 시작해 지금까지 식물종 확보와 보급에 헌신하고 있다. 지금도 식물원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택주 한택식물원장(문화융성위원회 위원)을 만나 식물원과 조경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김부식 발행인・정리:배석희 기자>

식물원을 만들게 된 계기?
도시설계일을 하다가 시골로 내려가야겠다고 맘을 먹고, 고향인 이 곳으로 내려와 목장을 시작했다. 목장에서 방목으로 소를 키우다보니 산사태 우려가 있어서 조경수를 심기 시작했다. 그런데 조경수가 계속 죽었다. 그래서 선진국에서는 나무를 어떻게 심을까라는 생각에 외국을 돌아다니면서 식물원을 보게 됐다. 해외에서는 식물원 자체가 생활문화였지만, 우리나라에 와서 보니 식물원이 한 곳도 없었다. 그래서 식물원을 만들기로 마음 먹었다.
처음 식물원을 만들기 위해 우리 식물을 모아야하는데, 어디에도 없었다. 결국 전국을 다니며 식물을 채집하기 시작했다. 1979년 그렇게 식물원을 시작했다. 이후 식물도감을 갖고 전국을 다니다보니 소문이 나면서 나중에는 지금은 작고하신 유달영 선생, 이창복 선생, 이영노 선생 들이 많이 도와줬다. 그렇게 시작한 식물원이 오늘까지 온거다.

포기하려고 했었던 적은 없었나?
많은 돈을 들여 식물원을 만들었지만,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재정적으로도 힘들어서 그만둘려고 생각했었다. 그게 1980년대 중반이다. 그 즈음해서 생물종다양성협약을 통해 세계적으로 생물자원으로서 종자확보에 혈안이 되면서 일본을 시작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야생화 붐이 일어났다. 당시 우리 야생화를 볼 수 있는 곳이 한택식물원 밖에 없었다. 그래서 모든 언론사에서 이곳으로 와서 야생화를 취재하면서 인터뷰도 해갔다. 나에 대한 칭찬 일색이었다. 식물원을 그만두려고 맘을 먹고 있던 차에 이런 일이 벌어지다보니 쉽게 결정을 하지 못했다. 사회적인 변화와 흐름에 그만둘 기회를 놓쳐 지금에 이르게 됐다.

운영상 어려운점이 무엇인가?
식물원법이 없다는 게 가장 문제다. OECD가입 국가 중에 식물원법이 없는 나라, OECD가입 국가 중 종합대학에 식물원이 없는 나라가 우리나라 밖에 없다. 그래서 20여년간 식물원법을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수포로 돌아갔다. 처음엔 환경부를 통해 법을 만들려니 산림청이 반대하고, 산림청을 설득해 만들려니 환경부에서 반대해서 수목원법이 됐다. 이후에 다시 환경부가 동식물원법을 만들려고 하니 산림청에서 반대해 결국 무산됐다.
식물원법이 없다보니 식물원에 대한 정부 혹은 지자체의 지원근거가 없다. 사실 민간 식물원이 입장료 수입만으로 운영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외국 대부분의 식물원은 식물원법에 근거해서 지원을 받고 있다. 식물원은 수익을 위한 사업이 아니라 식물종 확보와 보급 그리고 국민들에게 휴식의 공간으로 제공하는 공공적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한택식물원은 2001년 민간 재단법인으로 만들었다. 재단법인으로 만든 것은 후세에도 식물원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지 못하고, 식물원으로 영구적으로 남기고 싶어서다.

식물원의 역할은?
식물원의 역할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유전자원인 식물종을 확보하는 것이다. 현재 지구상에는 식물이 25만 종이 있고, 우리나라 자생종은 3500여 종이 있다. 그 자원의 종자를 확보하는게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종자전쟁이다. 식물원이 얼마나 훌륭한지에 대한 판단은 식물종을 얼마만큼 보유하고 있느냐로 판단한다.
두 번째는 식물에 대한 연구이고, 그리고 일반인들에 대한 교육, 식물의 공개를 통해 국민생활 향상과 힐링 공간의 제공 등이다.

한택식물원을 소개해달라
한택식물원은 1979년 서원 개발을 시작으로 1983년 식물원조성 마스터플랜을 수립해 동원을 개발하기 시작했으며, 2000년에는 경기도에서 재단법인 승인을 받았다. 2002년 산림청에 수목원으로 등록하고, 그 이듬해 식물원을 공식 개원했다.
한택식물원은 약 20만 평 규모로 동원과 서원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서원은 서식지외 보전지역 및 연구재배 지역으로 일반인에게 공개하지 않고 있다. 동원은 수생식물원, 희귀식물원 등 35개의 테마정원으로 구성됐다.
특히, 우리 식물원은 환경부지정(멸종위기야생동식물종) 보전사업으로 우리나라에서 멸종위기에 처해있거나 희귀한 식물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관리하여 자생지에 복원하는 프로젝트를 환경부와 함께 하고 있다.

한택식물원만의 특징은?
우리식물원에는 자생종 2400종을 포함해 총 1만7000여 종의 식물을 보유하고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식물원이라고 자부한다.
한택식물원의 가장 큰 특징은 자연스러움이다. 나는 식물을 채집하면서 배웠다. 그래서 식물들이 서로 더불어 살아 갈 수 있도록 심었다. 즉, 한 공간에 한 가지 식물만 식재하는게 아니라 서로 어우러져 살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식물을 함께 심는데, 이게 바로 생태적인 식재다. 이는 식물의 특성을 알아야만 가능하다. 이런 생태적인 식재는 자연스러움 그 자체다. 그 자연스러움이 한택만의 특징이다.
또 하나의 차별화된 점은 수생식물원이다. 수생식물이 잘 자라기 위해서는 깊이가 30cm가 넘으면 안된다. 외국에서도 인정하고 있는 게 수생식물원이다.

▲ 이택주 한택식물원장(문화융성위원회 위원)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으로 선정됐다. 어떻게 선정됐나?
문화융성위원회는 문화적 가치를 사회전반에 확산시키기 위해 조직된 대통령 직속기관이다. 처음에 위원회에서 위원으로 참여해 달라는 요청이 왔을 때 거절했었다. 위원회가 음악, 미술 등 예술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내가 가서 뭘하겠는가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데 그 문화안에 야생화, 정원문화가 포함되어 있다는 말에 참여하게 됐다. 식물원이나 정원을 문화에 포함시켜줘서 고맙게 생각한다.

문화융성위 전문위원에는 정원 관련된 사람이 없다. 어떻게 생각하나?
위원 20명 중 나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예술하는 사람들이다. 더구나 전문위원은 한사람도 없다.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나 혼자 말하는게 한계가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청와대에 전문위원으로 2명을 추가해 줄 것을 요청할 계획이며, 조경계에서 2명을 추천받을 예정이다.

위원회에 제안한 것이 있나?
첫 번째 회의에서 모두발언 시간으로 3분이 주어졌다. 그 시간을 전부 식물원법의 필요성에 대해 말했는데, 그게 받아들여져 현재 수목원법 개정을 통해 식물원법을 추가하는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다. 20년간 못했던 일인데 기분이 매우 좋다.
그리고 두 가지를 제안했다.
한 가지는 도로변 경관개선이다. 즉 고속도로나 도로변의 나무를 간벌하고, 진달래와 단풍나무 등을 심어서 꽃피고 단풍이 예쁜 도로변 경관으로 개선하자는 내용이다.
두 번째는 농촌마을 앞산과 뒷산을 간벌해서 햇볕이 조금 들어가게 한 다음 산나물과 약초 그리고 야생화를 식재하는 것이다. 또한 둘레길을 만들고 정자 등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면 그게 바로 주말농장이 된다. 그렇게되면 1년에 한 두번 찾은 고향이 수시로 찾아가는 고향이 될 것으로 본다.

조경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조경은 40년 역사를 가졌고, 4조 원의 매출을 올린다고 들었다. 그런데 조경을 관리하는 주무부서가 없다는 게 말이되나?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를 준비하면서 주무부서를 요청했는데, 국토부와 문체부가 거부해서 산림청이 맡았다고 하더라. 주무부서가 없어서 생긴 어이없는 일이다.
국토부 담당자들의 조경에 대한 인식의 문제도 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어려운 경제현실 탓에 건설공사의 부대공사로 조경을 시작했던 것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경제적 여건과 사회적 흐름이 변한 지금도 조경이 토목이나 건축의 부대공사로 분류된다는게 말이 되는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국토부 담당자들의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박정희 대통령이 만든 조경을 이제는 틀을 확립해야 한다. 조경이 토목이나 건축의 부대공사가 아닌 독립된 공종으로 분리해야 하며, 조경을 문화체육관광부로 옮기거나, 국토부 내 담당부서를 만드는 일이 문화융성위원으로써 내가 해야 할 일이며, 역할이라 생각하고 있다.

조경인에게 바람은? 
조경학과가 있는 대학이 50개이고, 매년 2000명의 졸업생이 배출된다고 들었다. 그런데, 조경학과 출신들의 문제는 식물에 대해 너무 모른다는 것이다. 조경학과 학생을 데려와 써도 다른 학생들과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조경학과 만의 차별화된 게 없으면 누가 조경학과 학생들을 쓰겠는가?
조경인들의 식물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 조경학과 교수 마저 ‘식물은 조경의 소재 중 하나일 뿐이다’라고 말하는데, 이런 식물에 대한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
조경은 자연을 축소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조경에 식물을 빼고 만들 수 있겠는가? 식물은 조경의 소재 이전에 필수이다. 없어서는 안 되는 꼭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하고싶은 말?
최근 여러 지자체에서 해외에 한국정원을 조성하고 있다. 문제는 한국정원에 대한 기준도 없고 관리부서도 없는 상황에서 무분별하게 남발하다보니 한국정원에 대한 정체성마저 흔들리고 있다. 외국에 나가보면 일본정원과 중국정원이 멋있게 지어져 있다. 하지만 한국정원에 대한 정체성은 모호하다. 정원에 대한 관리부서를 만들고, 한국정원에 대한 기준 같은 관련규정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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