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가드닝 브리핑)“관리가 뒷받침 안된 설계 또는 디자인은 의미는 없습니다.”
2월 중순, 어느 조경업체에서 주관한 가든아카데미에서 푸른수목원 이정철(44) 원장이 강단에 섰다. 국내 정원설계에 관한 쓴소리와 정원테마의 식물 선정에 관한 이야기는, 강좌에 참석한 조경업계에서 활동하는 설계가들을 다소 놀라게 했다. 하지만 2시간으로 예정된 강의가 20분이 훌쩍 넘어도 참석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가든디자인에 대한 그의 명쾌한 해석은 푸른수목원 사무실에서 들을 수 있었다.

원장님의 학창시절은 어땠는지
“저는 대학 때 조금 유별났어요. 1학년 때 남들은 풋풋한 대학생활을 시작했지만, 저는 입학하자마자 연구실 생활을 시작하고, 트랙터 등의 농기구를 몰기 시작했죠. 특히 4학년 때는 콤바인까지 운전할 수 있을 정도로 모든 농기구를 다룰 수 있게 되었어요. 하지만 잠시 학문에 대한 회의감이 생길 때 쯤,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이 'Vegetable Gardening'이라는 외국 서적이었어요.”

단순히 책을 발견한 것이 대단한 일인가
“정원이라는 것이 신선한 충격이었죠. 특히 가드닝(Gardening)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어요. 그 순간 생각했어요. ‘바로 이것이다’라고요.
그래서 교수님 방에서 관련 서적을 찾아 가드닝 분야에 관한 지식을 넓히기 시작했죠. 목표가 확실해지니 자신감이 생기더군요. 그때부터 국내 식물의 재배분야를 터득하기 시작하고, 점차 기본적인 육종까지도 할 수 있을 정도의 내공이 쌓이더군요. 구근류로 박사학위를 받고 한택식물원에서 가드너로 일을 시작했어요.

전공분야를 활용하기 좋은 직장이었을까
“일에 있어서 ‘괴짜’라고 부르는 한택식물원 원장과 함께 식물원의 거의 모든 정원 일에 참여했어요. 한택식물원 원장님은 새벽 6시 30분에 출근해 일을 지시하면서, 벌써 머리에 곳곳의 정원의 디자인과 식물 배치를 생각하시죠. 그런 점에서 가드너들이 힘들어 했지만, 저는 배우는 게 아주 많았어요. 그때 해뜨기 전부터 일하는 습관은 현재 푸른수목원 원장이 되어서도 버리지 못하고 있어요.”

지난 강의에 말한 국내 정원설계, 본인의 생각은 어떤가
“아쉬운점이 많은 것은 사실이예요. 정원을 설계하기 전에 식물에 대해 제대로 연구하고 조사하는 것은 기본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점에서 현재 몇몇 정원을 설계하시는 분들이 등한시 하는 것 같아 아쉬운 부분이 많아요. 공모전에 출품되는 작품들도 마찬가지예요. 단순히 전시용이라면 몰라도, 오래가지 못하는 정원이라면 생각해 봐야 해요. 물론 제가 설계하는 정원도 관리가 뒷받침 안되면 소용없어요. 예전에 어느 장미원이라고 설계한 곳을 가보니 예각으로 설계를 해 놓았더군요. 조경에서 예각으로 설계하는 것은 그 공간을 버린다는 의미예요. 둔각으로 설계를 해야 식물을 심을 수 있는 공간이 생기죠.”

식물 중심의 정원설계, 사실 쉽지는 않은 것 같은데...
“국화과에 속하는 벌개미취라고 있어요. 자체적인 번식력을 가진 벌개미취는 환경만 맞으면 엄청난 번식을 하게 되죠. 8~9월 사이에 꽃피는 비슷한 쑥부쟁이보다 나아요. 즉, 식물을 선정할 때 번식능력도 감안해야 해요. 단순히 보이는 색깔만 맞추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로테이션(Rotation)할 수 있는 여분의 식물을 확보해야 한다고 봅니다. 또 꽃향유라고 있어요. 2년생의 꽃향유는 향이 나요. 비슷한 식물이 키가 좀 더 크지만 꽃향유와 비슷한 생리의 배초향이 있어요. 과연 어떤 것을 심을까요. 난 배초향을 심을 것이지만요. 즉, 느낌이 비슷한 것을 대체할 만한 소재들을 염두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원, 관리를 고려해 10년 후를 예상한 설계를 생각해라"

 

그런 식물소재를 사용하는 정원디자인, 중요하게 보는 것은 무엇인지
”어떤 설계가는 남들이 좋다고 해서 미루나무를 설계에 넣었더군요. 미루나무는 꽃가루가 심하게 날리는 나무예요. 식물을 잘 정리해 설계에 넣어야 하는데, 본인이 아는 게 없으니 나오는 것들이죠. 또 노루오줌의 속품종은 비슷겠지만 종간차이는 특성 자체를 다르게 하죠. 보통 정원 설계 시 가든 디자이너들이 실수하기 쉬운 부분이 식물의 키, 화색, 초장 등을 안배하고 나면 끝났다고 생각하는 것이예요.. 가장 중요한 식물의 ‘생육속도’를 빠뜨렸어요.

생육속도, 그런 부분까지도 고려해야하는가
“당연하죠. 금낭화 옆에 꽃을 벌개미취를 심는 경우가 있어요. 금낭화는 3년 만에 꽃이 피는 식물이에요. 또 금낭화는 6~7월에 개화를 하죠. 벌개미취는 8~9월에 피니 당연히 먼저 피는 금낭화가 잎이 올라올 것이라 생각들 하죠. 천만의 말씀입니다. 벌개미취가 먼저 잎이 올라와 다 덮어 버리죠. 결국 금낭화는 죽게 돼요. 이것이 식물의 경합, 즉 경쟁입니다. 일반적인 디자이너들이 화색과 키는 고려하지만 정작 식물의 크기와 생육은 고려 안하니 일어나는 실수들이죠. 식재에 들어갈 식물을 선택하려면 설계하는 사람들이 식물을 직접 키워봐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너무 야단만치는 것은 아닌가, 칭찬할 점도 이야기 해달라
“영국은 한번 가봤어요. 그곳은 기온이 따뜻하고, 눈이 와도 녹아버리고, 겨울에도 비가 오더군요. 한여름의 온도가 30도가 안 넘으니 잡초 발생율이 적어요. 또 이틀에 한 번씩 비가 올 정도이니 관수가 필요 없죠. 정원사가 관수안하고 풀도 안 뽑으니 얼마나 여유롭겠어요. 그냥 식물심고 스케치만 하면 되죠. 한국은 정원관리의 50% 이상이 풀 뽑는데 투자하죠. 게임이 안 된다고 봐요. 그런 점에서 국내 조경 또는 정원 디자이너들의 척박한 환경에 설계를 하는 것은 칭찬할만한 점이죠. 만약 영국의 가드너가 국내에서 정원사 일을 한다면 몇 일 못 버티고 가버릴 것이예요. 하하”

그러면 한국만의 정원, 어디서 찾아야 할까
“옛날 궁궐의 정원 앞마당에 나무를 안 심고, 다단식으로 돌을 쌓아 뒤편에 나무를 심은 것이 한국의 정원 양식이라고 봐요. 기본이 돌을 쌓아 틀을 만들고 나무와 식물을 심었던 담양 소쇄원, 정약용이 유배생활한 다산 초당, 강화도 마니산 등이 축석 등은 모두 한국만의 정원이예요. 돌을 갖고 꾸미는 정원은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과는 매우 달라요”

당신이 생각하는 한국식 정원은 무엇인가
“한택식물원을 가봐요. 그곳에 있을 때 한국식 정원이 어떤 것인지 내가 직접 만들어 놓은 것들이 있으니 구경해 보고 가세요. ”

정원과 관련한 최종 꿈이 있는지

“국내 가드닝 교육은 프로그램 내용이나 강사진들이 천차만별이죠. 푸른수목원에서 도시정원사 교육을 하고있어요. 이것은 내가 해보고 싶은 것의 전초전이라 할 수 있어요. 일선에서 물러나면 제가 동원할 수 있는 인력풀로 가드닝 스쿨을 만들고 싶어요. 그래서 이정철에게 배웠다는 것이 큰 자부심이 될 수 있도록 말이죠.”

 

▲ 푸른 수목원의 푸른뜨락. 본래 블록 포장 조성이 예정됐으나, 이 원장은 느낌에 맞게 다목적 광장으로 바꿨다.

 

저작권자 © Landscape Time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